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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소(尹光紹)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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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치승(稚繩)
호(號)소곡(素谷)
생년1708(숙종 34)
졸년1786(정조 10)
시대조선후기
본관파평(坡平)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윤동규(尹東奎)
신창맹씨(新昌孟氏)
외조부맹숙장(孟淑章)
저서『소곡유고』
저서『명재연보(明齋年譜)』

[상세내용]

윤광소(尹光紹)
1708년(숙종 34)∼1786년(정조 1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치승(稚繩), 호는 소곡(素谷).

부친은 윤동로(尹東輅)이며, 모친은 신창맹씨(新昌孟氏)맹숙장(孟淑章)의 딸이다. 이조판서 윤동규(尹東奎)에게 입양되었다.

19세 때 생원시에 급제하고 1739년(영조 15) 의릉참봉(懿陵參奉)을 제수받았다.

1740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뒤 1744년 시강원겸설서가 되었다. 같은해에 홍문관수찬을 제수받아 이조판서 이종성(李宗城)과 함께 『속오례의』를 편찬하였다.

이때 그는 개원례(開元禮)에 의거하여 원본을 개정하는 한편, 그 차이점을 상세히 밝히고 문구를 교감하여 별도로 「고이(考異)」를 첨가하기도 하였는데, 그뒤 예(禮)에 밝다고 인정받아 여러 편찬사업에 참가하였다. 뒤에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으며, 이어 교리사간필선승지공조참의이산부사(理山府使)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55년 윤지(尹志)의 난에 관련되어 을해옥사 때 투옥되었고, 1776년(정조 즉위)에는 정후겸(鄭厚謙)의 일파로 몰려 유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무고함이 밝혀져 복직되었다.

1786년 자헌대부지돈녕부사(資憲大夫知敦寧府事)가 되어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소곡유고』 22권이 있고, 편서로는 『명재연보(明齋年譜)』가 있다.

[참고문헌]

素谷遺稿

[집필자]

한여우(韓如愚)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