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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적(金尙迪)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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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순(士順)
생년1708(숙종 34)
졸년1750(영조 26)
시대조선후기
본관강릉(江陵)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시형(金始炯)

[상세내용]

김상적(金尙迪)
1708년(숙종 34)∼1750년(영조 2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사순(士順).

부친은 병조판서 김시형(金始炯)이다.

1733년(영조 9)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고 교리가 되었다.

1735년 사관(史官)이 되어 사초(史草)의 작성에 종사하였으며, 1741년 홍상한(洪象漢)을 대신하여 관동어사로 파견되었다. 곧 지평장령을 거쳐 1743년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응교(應敎)로서 궁중에서 사용할 가인례(家人禮)에 대해 진술하였다.

1746년 경상도심리사(慶尙道審理使)를 역임하고,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다.

1748년 형조참의로 있으면서 참핵사(參覈使)로 봉황성(鳳凰城)에 가서 압수한 것을 영수하는 것과 잃어버린 은(銀)에 대한 두 안건을 추고하도록 하였다.

이듬해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예조참판, 1750년에 형조참판을 지냈다. 그해에 어염세를 균등히 하기 위하여 6도에 삼사(三使)를 파견할 때 경기황해 두 도의 균세사(均稅使)로 나가 민정을 살폈다.

풍모와 지기가 뛰어났고 직언도 서슴지 않았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耳溪集

[집필자]

오성(吳星)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