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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언(鄭夏彦)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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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미중(美仲)
호(號)옥호자(玉壺子)
생년1702(숙종 28)
졸년1769(영조 45)
시대조선후기
본관영일(迎日)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무(鄭堥)
조부정석기(鄭碩基)
외조부윤우태(尹遇泰)
저서『지당집』

[상세내용]

정하언(鄭夏彦)
1702년(숙종 28)∼1769년(영조 4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미중(美仲), 호는 지당(止堂)옥호자(玉壺子).

정석기(鄭碩基)의 손자로, 목사 정무(鄭堥)의 아들이며, 모친은 윤우태(尹遇泰)의 딸이다.

1735년(영조 11)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742년 경상도도사 시절 진휼사종사관(從事官)으로 선발되어 경상도의 양곡을 중앙으로 운반하는 일에 종사하다가, 감진어사(監賑御史) 홍계희(洪啓禧)와의 의견상충으로 삭직되었다.

이듬해 사관(史官)으로 다시 기용되고, 1744년 조정에서 『속대전』을 찬수할 때 왕의 특명으로 찬집랑(纂輯郞)에 보임되어 이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 정언장령을 역임하고 1747년 의주부윤으로 나갔으며, 좌부승지에 이어 1763년 병조참의에 오르고 대사간을 지냈다.

독서를 좋아하였고 문예‧글씨에도 능하였는데, 조구명(趙龜命)이 그의 글을 읽고 “『소동파집(蘇東坡集)』에 실려도 손색이 없겠다. “라고 찬탄하였고, 경연(經筵)에서도 재량있는 말로 왕의 칭찬을 많이 받았으며, 어제(御製)의 편제(篇題)와 홍화문(弘化門)의 액(額)을 썼다.

저서로는 『지당집』이 있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止堂集
窮悟集
槿域書畵徵

[집필자]

반윤홍(潘允洪)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