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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李瑜)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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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유옥(幼玉)
생년1691(숙종 17)
졸년1736(영조 12)
시대조선중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명희(李命熙)
한씨(韓氏)
조부이영(李泳)
증조부이상주(李相胄)
처부정중선(鄭重先)
외조부한제유(韓濟愈)

[상세내용]

이유(李瑜)
1691년(숙종 17)∼1736년(영조 12).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옥(幼玉).

증조부는 이상주(李相胄), 조부는 이영(李泳)이고, 부친 이명희(李命熙)와 모친 한씨(韓氏) 사이에서 2남 중 1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이후(李)이고, 외조부는 한제유(韓濟愈), 처부는 정중선(鄭重先)이다.

29세 때 1719년(숙종 45) 기해(己亥) 증광시(增廣試) 생원(生員) 2등 3위로 합격하였으며, 같은 해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22위로 급제하였다.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거쳐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장연부사(長淵府使)강화유수(江華留守)대사성(大司成)예조참판(禮曹參判)부제학(副提學)이조판서(吏曹判書)형조판서(刑曹判書)병조판서(兵曹判書) 등을 역임하였다.

1721년(경종 1)에 대간에서 합사하여 박태항(朴泰恒) 등 28명의 이름으로 올린 상소의 내용이 불경하다 하여 박태항한세량(韓世良)을 절도에 위리 안치할 것을 청하였는데, 경종이 윤허하지 않았다. 당시 지평(持平)이었던 이유박태항을 귀양 보내기 위해 상소문의 연명자를 모두 삭출할 것을 임금에게 상서(上書)하고자 하였으나, 같은 사헌부였던 유복명(柳復明)이 반대를 하므로 박태항만 삭출할 것을 임금에게 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서 도리어 이유유복명과 함께 해도(海島)로 유배되었다.

1725년에는 유복명과 함께 『선조실록』 편찬문제와 각사 서리의 폐단에 대해서 건의하여 시정하도록 하였다. 1735년에는 태학의 유생들이 성균관을 비우고 물러간 일에 대해서 자신을 견책해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1736년에는 원접사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이유는 재주와 능력은 있었으나 성품이 부박(浮薄)하고 사휼(詐譎)한데다 무식하여 사리에 어긋난 일이 많았고, 임금에게 아첨을 잘해 최고의 총우(寵遇)를 받았다. 그러나 풍원군(豊原君) 조현명(趙顯命)이유가 죽자 국가를 위해 일할 만한 사람이 죽었다며 이유의 죽음을 몹시 애통해 하였다.

[참고문헌]

國朝文科榜目
朝鮮王朝實錄

[집필자]

이은영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