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종(李應鍾)
[요약정보]
| UCI | G002+AKS-KHF_13C774C751C885U9999X0 |
| 자(字) | 화숙(和叔) |
| 호(號) | 사매당(四梅堂) |
| 생년 | ?(미상) |
| 졸년 | ?(미상) |
| 시대 | 조선중기 |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 묘소 |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畝良面) 영양리(嶺陽里) |
| 저서 | 『가례부기(家禮附記)』 |

[상세내용]
이응종(李應鍾)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 유학자‧의병장. 자는 화숙(和叔)이고, 호는 사매당(四梅堂)이다.
완풍대군의 8세손이다.
윤교형(尹橋亨)의 문인이다. 1558년(명종 13)는 생원으로 성균관에서 수학하였으나 붕당의 조심을 보고 귀향하였다. 예학(禮學)을 연구하여 『가례부기(家禮附記)』를 저술하였다.
한편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71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동생 이홍종(李洪種)과 아들 이극부(李克扶)와 함께 전라남도 장성(長成) 남문(南門) 창의(倡義)에 참가하였다. 이응종은 호남 의병에 가담하여 광주(光州)의 의병 진영에 군량미와 군수물자를 보급하였고, 의주(義州)의 행재소에 군량을 수송하는 데 전력하였다. 그러던 중 영광군수(靈光君守) 남궁현(南宮俔)의 상을 당하자 정희맹 등 48인이 이응종을 영광성(靈光城) 수성대장(守城大將)으로 추대하였다.
묘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畝良面) 영양리(嶺陽里)에 있다.
완풍대군의 8세손이다.
윤교형(尹橋亨)의 문인이다. 1558년(명종 13)는 생원으로 성균관에서 수학하였으나 붕당의 조심을 보고 귀향하였다. 예학(禮學)을 연구하여 『가례부기(家禮附記)』를 저술하였다.
한편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71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동생 이홍종(李洪種)과 아들 이극부(李克扶)와 함께 전라남도 장성(長成) 남문(南門) 창의(倡義)에 참가하였다. 이응종은 호남 의병에 가담하여 광주(光州)의 의병 진영에 군량미와 군수물자를 보급하였고, 의주(義州)의 행재소에 군량을 수송하는 데 전력하였다. 그러던 중 영광군수(靈光君守) 남궁현(南宮俔)의 상을 당하자 정희맹 등 48인이 이응종을 영광성(靈光城) 수성대장(守城大將)으로 추대하였다.
묘는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畝良面) 영양리(嶺陽里)에 있다.
[참고문헌]
전라남도지
영광읍지
전주이씨세보(완풍대군파)
영광읍지
전주이씨세보(완풍대군파)
[집필자]
장준호
| 대표명 | 이응종(李應鍾) |
| 호 | 사매당(四梅堂) |
호 : "사매당(四梅堂)"에 대한 용례
| 수정일 | 수정내역 |
|---|---|
| 2009-09-30 | 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