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득일(申得一)
[상세내용]
신득일(申得一)
생졸년 미상. 조선 중기의 의원. 본관은 평산(平山).
부친은 중군(中軍) 신택주(申澤舟)이다.
1591년(선조 24) 신묘식년의과(辛卯式年醫科)에 급제, 내의(內醫)로서 왕실을 비롯하여 대관(大官)과 조사(朝士)의 질병치료에 공이 많았다. 선조 승하 시에 전의감정(典醫監正)을 지내며 치료를 담당하였으며, 1608년(광해군 1) 의서(醫書)를 인출할 때에 감교관(監校官)이 되어 이를 주관한 공으로 정직(正職)에 제수되었다. 1619년(광해군 11)에는 시약청(侍藥廳)에 봉직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어 동반직(東班職)에 제수되었으며, 1623년(인조 1)에는 임금의 병을 잘못 치료했다 하여 문책당하기도 하였다.
내의원(內醫正)의 수의(首醫)로서 광해군과 인조 때에 활약하였으며, 봉림대군(鳳林大君)을 치료한 공으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제수되고 품계가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1591년(선조 24) 신묘식년의과(辛卯式年醫科)에 급제, 내의(內醫)로서 왕실을 비롯하여 대관(大官)과 조사(朝士)의 질병치료에 공이 많았다. 선조 승하 시에 전의감정(典醫監正)을 지내며 치료를 담당하였으며, 1608년(광해군 1) 의서(醫書)를 인출할 때에 감교관(監校官)이 되어 이를 주관한 공으로 정직(正職)에 제수되었다. 1619년(광해군 11)에는 시약청(侍藥廳)에 봉직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어 동반직(東班職)에 제수되었으며, 1623년(인조 1)에는 임금의 병을 잘못 치료했다 하여 문책당하기도 하였다.
내의원(內醫正)의 수의(首醫)로서 광해군과 인조 때에 활약하였으며, 봉림대군(鳳林大君)을 치료한 공으로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제수되고 품계가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韓國醫學史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韓國醫學史
[집필자]
오윤정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