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朴永緖)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C15C601C11CD1624X0 |
시호(諡號) | 충장(忠壯) |
생년 | 1579(선조 12) |
졸년 | 1624(인조 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성주(星州)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부 | 박이현(朴而絢) |

[상세내용]
박영서(朴永緖)
1579(선조 12)∼1624년(인조 2).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박이현(朴而絢)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 1620년(광해군 12) 옥구현감을 거쳐 창성부사(昌城府使)를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남이흥(南以興)‧정충신(鄭忠信) 등과 함께 반란군의 뒤를 따라 황해도 황주의 신교(新橋)에 이르러 이들과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이에 관군의 선봉장이었던 그는 단신으로 말을 몰아 적중에 돌입하여 이괄을 잡으려 하였으나 오히려 말이 넘어져 포로가 되었다. 그는 이괄을 보고 “조정이 너를 부원군에 봉하고 부원수를 시켰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배반하였느냐.”고 꾸짖었다.
이괄과 한명련(韓明璉)이 그의 용기를 아껴 백방으로 회유하였으나 굴하지 않다가 살해되었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 때 남이흥(南以興)‧정충신(鄭忠信) 등과 함께 반란군의 뒤를 따라 황해도 황주의 신교(新橋)에 이르러 이들과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이에 관군의 선봉장이었던 그는 단신으로 말을 몰아 적중에 돌입하여 이괄을 잡으려 하였으나 오히려 말이 넘어져 포로가 되었다. 그는 이괄을 보고 “조정이 너를 부원군에 봉하고 부원수를 시켰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배반하였느냐.”고 꾸짖었다.
이괄과 한명련(韓明璉)이 그의 용기를 아껴 백방으로 회유하였으나 굴하지 않다가 살해되었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집필자]
송정현(宋正炫)
대표명 | 박영서(朴永緖) |
성명 | 박영서(朴永緖) |
성명 : "박영서(朴永緖)"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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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0-03-23 | 관양(冠陽) 이광덕(李匡德) 撰贈參判朴公謚狀을 참고하여 본관을 성주(星州)에서 순천으로 고치고 생년을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