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로(金敬老)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ACBDB85CD1597X0 |
생년 | 1548(명종 3) |
졸년 | 1597(선조 30)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경주(慶州) |
활동분야 | 무신 > 무신 |
부 | 김원(金騵) |
출신지 | 남원 |
[상세내용]
김경로(金敬老)
1548년(명종 3)∼1597년(선조 30). 조선 중기의 무신. 자는 성숙(惺叔). 본관은 경주(慶州). 남원 출신.
현령(縣令) 김원(金騵)의 아들이다. 어려서 학문에 뜻을 두었으나 도중에 포기하고 무예를 닦아 1576년 병자 별시무과에 급제하였다.
1587년(선조 20) 경성판관이 되어 두만강변 야인을 소탕하는 데 전공을 세웠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부사로 경상도관찰사 김수(金晬)의 막하에서 군사의 규합, 군량조달 등에 노력하였다.
이듬해 황해도방어사가 되어 관찰사 유영경(柳永慶)의 명에 따라 해주의 방어를 맡았으며, 1594년 첨지중추부사로서 도원수 권율(權慄)의 막하에서 전라도 방어를 맡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적이 사천‧고성 등지로 상륙하여 남원을 포위하자 조방장(助防將)으로 전주에 있던 그는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 남원으로 들어가 방어사 오응정(吳應井), 구례현감 이원춘(李元春)과 함께 명나라의 부총병(副總兵) 양원(楊元)을 도와 왜적과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진몰(陣歿)하였다.
남원의 충렬사(忠烈祠)에 봉향되었다.
1587년(선조 20) 경성판관이 되어 두만강변 야인을 소탕하는 데 전공을 세웠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부사로 경상도관찰사 김수(金晬)의 막하에서 군사의 규합, 군량조달 등에 노력하였다.
이듬해 황해도방어사가 되어 관찰사 유영경(柳永慶)의 명에 따라 해주의 방어를 맡았으며, 1594년 첨지중추부사로서 도원수 권율(權慄)의 막하에서 전라도 방어를 맡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적이 사천‧고성 등지로 상륙하여 남원을 포위하자 조방장(助防將)으로 전주에 있던 그는 병마절도사 이복남(李福男)과 함께 결사대를 조직, 남원으로 들어가 방어사 오응정(吳應井), 구례현감 이원춘(李元春)과 함께 명나라의 부총병(副總兵) 양원(楊元)을 도와 왜적과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진몰(陣歿)하였다.
남원의 충렬사(忠烈祠)에 봉향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壬辰戰亂史(李炯錫, 壬辰戰亂史刊行委員會, 1967)
國朝人物考
壬辰戰亂史(李炯錫, 壬辰戰亂史刊行委員會, 1967)
[집필자]
이정일(李貞一)
명 : "경로(敬老)"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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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
2011-05-04 | 忠烈祠誌(1974년 간행)를 참고하여 자, 생년, 본관, 부를 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