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룡(尹敬龍)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4ACBDB8E1B1686X0 |
자(字) | 운중(雲仲) |
생년 | 1686(숙종 12) |
졸년 | 1743(영조 19)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칠원(漆原)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윤지순(尹志淳)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윤경룡(尹敬龍)
1686년(숙종 12)∼1743년(영조 19).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운중(雲仲). 윤지순(尹志淳)의 아들이다.
1730년(영조 6)에 도사(都事)로서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 2인으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에 임명되었고, 곧 홍양현령이 되었는데, 2년 후에 홍양현이 홍양목(洪陽牧)으로 승격되자 6품으로 목사가 되었다.
그뒤 교리가 되어 호남괘서사건(湖南掛書事件)의 처리와 지방관의 불법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곧 수찬에 임명되었으나 직사를 잘못 처리하여 보은현감으로 좌천되었고, 이후 부수찬‧수찬을 역임하고, 1737년에 의주부윤으로 외직에 나갔다.
다음해에 공홍도감사(公洪道監司)가 되었으나 관내에서 조정을 비방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잘 다스리지 못하여 파면되었다. 곧 재기용되어 승지에 올랐다.
1730년(영조 6)에 도사(都事)로서 정시문과(庭試文科)에 을과 2인으로 급제하여 사간원정언에 임명되었고, 곧 홍양현령이 되었는데, 2년 후에 홍양현이 홍양목(洪陽牧)으로 승격되자 6품으로 목사가 되었다.
그뒤 교리가 되어 호남괘서사건(湖南掛書事件)의 처리와 지방관의 불법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곧 수찬에 임명되었으나 직사를 잘못 처리하여 보은현감으로 좌천되었고, 이후 부수찬‧수찬을 역임하고, 1737년에 의주부윤으로 외직에 나갔다.
다음해에 공홍도감사(公洪道監司)가 되었으나 관내에서 조정을 비방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잘 다스리지 못하여 파면되었다. 곧 재기용되어 승지에 올랐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장동익(張東翼)
명 : "경룡(敬龍)"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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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