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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림(洪霖)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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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진()
자(字)춘경(春卿)
생년1685(숙종 11)
졸년1728(영조 4)
시대조선중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의료 > 의료인
홍수명(洪受命)

[상세내용]

홍림(洪霖)
1685년(숙종 11)∼1728년(영조 4). 조선 후기의 의사(義士). 본관은 남양(南陽[唐]). 초명은 진(震). 자는 춘경(春卿). 첨절제사 홍수명(洪受命)의 아들이다.

1727년(영조 3) 충청도병마절도사 이봉상(李鳳祥)에 의하여 청백함이 인정되어 막료가 되었다.

1728년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청주성이 함락되고 이봉상이 잡힌 다음 죽음을 당하자 그는 자신이 절도사라 하며 반란군을 꾸짖었다. 반란군은 그를 충신이라 칭찬하고 후일 자손들을 녹용(錄用)하겠다고 하자, “나는 아들도 없거니와 있다 하여도 너희 같은 역적놈의 부하로 쓰이게 할 수는 없다.” 하고 죽었다. 뒤에 호조참판에 증직되고 정문이 내려졌다.

1729년 6월 조현명(趙顯命)의 주청으로 청주기(淸州妓)가 낳은 그의 아들이 면천(免賤)되고, 7월에 예조의 계(啓)에 따라 증직, 정려되었다.

1742년 검토관 이성중(李成中)청주를 지나다가 그곳 사람들이 홍림의 충의에 대하여 칭찬하는 것을 듣고 왕에게 아뢰어 그의 처에게 늠료(廩料)가 하사되었으며, 손자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특혜를 베풀어 그 충절을 기렸다. 시호는 충강(忠剛)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송준호(宋寯鎬)
대표명홍림(洪霖)
림(霖)
성명홍림(洪霖)
춘경(春卿)

성명 : "홍림(洪霖)"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紀年便攷v30金始㷜率三千軍遮守洞仙嶺兵使元百揆率親騎衛三百人遮守青石嶺待思晟就拿後罷兵○賊入清州殺兵使李鳯祥軍官洪霖營將南延年瑞鳯麟佐等合兵許稱行喪營葬以喪車載兵器潜入清洲城中乘夜斫殺兵使李鳯祥軍官洪霖突入抱持欲以身
紀年便攷v30瑞鳯麟佐等合兵許稱行喪營葬以喪車載兵器潜入清洲城中乘夜斫殺兵使李鳯祥軍官洪霖突入抱持欲以身代之賊并殺之又執營將南延年脅降延年罵不絶口遂死之虞候朴完元降于賊於是麟佐自稱大元帥偽署
勘亂錄v1祥熟睡叫噪突入營府營妓月禮及鳳祥親信裨將梁德溥開門引之鳳祥蒼黃覓床頭劍不得賊引出亂斫鳳祥軍官洪霖突入抱持欲以身代之賊竝殺之賊又入鎭營執營將南延年䝱降曰汝若降將大用不降當斬延年罵曰吾受國厚恩年過七
南征日錄v1處斬啓聞直犯兵使臥所兵使蒼黃覓床頭劍不得赤身跳出走竹林被執賊以劍脅降之罵曰我豈從汝逆豎叛耶速殺我裨將洪霖突入呼曰我是兵使也抱鳳祥欲以身代賊前縛之誘以利使降霖瞋目叱曰恨不能斬汝豈降汝求活乎乃竝殺霖與兵使又執
國朝捷錄v01洪霖
東國續修文獻錄v1丑節義見士禍編戊申節義英宗朝麟佐弼夢亂殉節擧義李鳳祥德水人贈贊成忠愍公旌南延年宜寧人贈兵判忠烈公旌洪霖淸州裨將閔濟章晦伯三錦堂驪興人贈兵判林潝長興人嘉善鄭彥壽甫汝醉醒齋進賢子贈戶參文德元大允松圃南平人判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0-04-19趙基應撰 贈資憲大夫戶曹判書兼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都摠管洪公諡狀을 참고하여 시호 충강(忠剛)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