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金尙奎)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AE40C0C1ADDCB1682X0 |
자(字) | 사창(士昌) |
생년 | 1682(숙종 8) |
졸년 | 1736(영조 12)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강릉(江陵)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김시환(金始煥) |
외조부 | 유정기(兪鼎基) |
[상세내용]
김상규(金尙奎)
1682년(숙종 8)∼1736년(영조 12).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사창(士昌).
부친은 판서 김시환(金始煥), 모친은 유정기(兪鼎基)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계에 진출하였다.
1712년에 사간원정언에 임명된 이래 홍문관‧사헌부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쳤다. 경종이 죽고 영조가 즉위하자 고부 겸 주청사(告訃兼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에 발탁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나자 광주부윤(廣州府尹)으로 남한산성을 방어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뒤 여러 차례 승지‧대사간 등 요직을 거쳤으며, 특히 학식과 덕망이 있어 다섯 차례에 걸쳐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736년 승지로 재직중 죽었다.
부친은 판서 김시환(金始煥), 모친은 유정기(兪鼎基)의 딸이다.
1705년(숙종 3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계에 진출하였다.
1712년에 사간원정언에 임명된 이래 홍문관‧사헌부의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쳤다. 경종이 죽고 영조가 즉위하자 고부 겸 주청사(告訃兼奏請使)의 서장관(書狀官)에 발탁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이 일어나자 광주부윤(廣州府尹)으로 남한산성을 방어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뒤 여러 차례 승지‧대사간 등 요직을 거쳤으며, 특히 학식과 덕망이 있어 다섯 차례에 걸쳐 성균관대사성에 임명되기도 하였다.
1736년 승지로 재직중 죽었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집필자]
우인수(禹仁秀)
대표명 | 김상규(金尙奎) |
성명 | 김상규(金尙奎) |
성명 : "김상규(金尙奎)"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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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