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申鐔)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2E0C2ECFFFFB1662X0 |
자(字) | 익중(翼仲) |
호(號) | 봉주(鳳洲) |
생년 | 1662(현종 3) |
졸년 | 1715(숙종 41)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신명규(申命圭) |
외조부 | 남호학(南好學)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심(申鐔)
1662년(현종 3)∼1715년(숙종 4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익중(翼仲), 호는 봉주(鳳洲). 집의 신명규(申命圭)의 아들이고, 모친은 감조관(監造官) 남호학(南好學)의 딸이다.
1704년(숙종 30)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사서‧지평‧정언을 거쳐 도당(都堂)의 홍문록에 올랐으며 지제교(知製敎)로서 우윤 김횡치(金澋致)의 제문을 지었다.
수찬‧헌납‧교리를 거쳐, 부사과 때에 타고난 성격이 추려(麤厲)하고 지론이 괴패(乖悖)하다는 간원(諫院)의 탄액으로 파직당하였다. 이조참판 이만성(李晩成), 이조참의 이태좌(李台佐), 이조정랑 이재(李縡)의 상소로 교리에 복직되었다.
응교‧집의를 거쳐, 승지 때에 진하(陳賀)를 하지 않은 예관(禮官)은 바꾸어야 한다고 상주, 예조판서가 바뀌었으며, 이조참의‧대사간을 지냈다. 문학언의(文學言議)에 유명하였다.
1704년(숙종 30)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사서‧지평‧정언을 거쳐 도당(都堂)의 홍문록에 올랐으며 지제교(知製敎)로서 우윤 김횡치(金澋致)의 제문을 지었다.
수찬‧헌납‧교리를 거쳐, 부사과 때에 타고난 성격이 추려(麤厲)하고 지론이 괴패(乖悖)하다는 간원(諫院)의 탄액으로 파직당하였다. 이조참판 이만성(李晩成), 이조참의 이태좌(李台佐), 이조정랑 이재(李縡)의 상소로 교리에 복직되었다.
응교‧집의를 거쳐, 승지 때에 진하(陳賀)를 하지 않은 예관(禮官)은 바꾸어야 한다고 상주, 예조판서가 바뀌었으며, 이조참의‧대사간을 지냈다. 문학언의(文學言議)에 유명하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號譜
淸選考
國朝榜目
號譜
淸選考
[집필자]
주웅영(朱雄英)
성명 : "신심(申鐔)"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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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