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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숭(兪崇)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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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원지(元之)
생년1661(현종 2)
졸년1734(영조 10)
시대조선중기
본관창원(昌原)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유회일(兪晦一)

[상세내용]

유숭(兪崇)
1661년(현종 2)∼1734년(영조 1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원지(元之). 유회일(兪晦一)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기용되어 별검으로서 1699년(숙종 25)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지평문학장령을 역임하였다.

1713년에 사간이 되어 호남 연해고을의 수령을 무신으로 임명할 것을 청하였고, 또 편당(偏黨)의 폐를 없애기 위하여 이조판서직을 윤번으로 임명할 것을 진언하였다.

1715년 동지부사청나라에 파견되었는데 돌아올 때 역관 김유기(金有基) 등이 궁각(弓角)을 몰래 사들여오다 청나라 관리에게 발각되어 그 책임으로 정사 진평군(晉平君) 택(澤)과 함께 파직당하였다.

곧 복직되어 집의승지 등을 거쳐 1719년에 강원도관찰사가 되고 이어서 대사간을 거쳐 1723년(경종 3)에 함경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신임사화로 파직, 강진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영조의 즉위로 풀려나 1725년(영조 1) 공조참의에 이어 다시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북변 고을의 수령을 누구나 기피하므로, 이곳 수령으로서 허물이 있는 자는 파직시키지 말고 결장(決杖)으로 다스리도록 청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이듬해 다시 대사간이 되고 도승지호조참판 등을 거쳐 1727년에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정미환국으로 소론들이 등용되자 이를 반대하다가 파직, 문외송출(門外送黜) 당하였다.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호서소모사(湖西召募使)로 기용되고 이어서 도승지대사간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시조 1수가 『청구영언』에 전한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문수홍(文守弘)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