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서(柳鳳瑞)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0BD09C11CB1654X0 |
자(字) | 계휴(季休) |
생년 | 1654(효종 5) |
졸년 | 1699(숙종 2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문화(文化)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유상운(柳尙運)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유봉서(柳鳳瑞)
1654년(효종 5)∼1699년(숙종 2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계휴(季休).
영의정 유상운(柳尙運)의 맏아들이며, 좌의정 유봉휘(柳鳳輝)의 형이다.
1684년(숙종 10)에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689년에 또 감제(柑製)에 장원으로 뽑혀서 곧 전시에 나가 문과에 올랐다.
벼슬은 사헌부‧사간원‧홍문관 등 삼사를 두루 거쳤으나, 관료들의 빈척(擯斥)을 받아 북평사(北評事)가 되었다가 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본디 성품이 정직하고 엄격하여 남의 허물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비록 친척이나 지구(知舊)라 할지라도 잘못이 있으면 추호도 용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좌충우돌 세상에 용납되지 않아서 마침내 멀리 변경지방에서 일생을 마치는 신세가 되었다.
영의정 유상운(柳尙運)의 맏아들이며, 좌의정 유봉휘(柳鳳輝)의 형이다.
1684년(숙종 10)에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1689년에 또 감제(柑製)에 장원으로 뽑혀서 곧 전시에 나가 문과에 올랐다.
벼슬은 사헌부‧사간원‧홍문관 등 삼사를 두루 거쳤으나, 관료들의 빈척(擯斥)을 받아 북평사(北評事)가 되었다가 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본디 성품이 정직하고 엄격하여 남의 허물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비록 친척이나 지구(知舊)라 할지라도 잘못이 있으면 추호도 용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좌충우돌 세상에 용납되지 않아서 마침내 멀리 변경지방에서 일생을 마치는 신세가 되었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이원균(李源鈞)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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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