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목임일(睦林一)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BAA9C784C77CB1646X0
자(字)사백(士伯)
호(號)청헌(靑軒)
생년1646(인조 24)
졸년?(미상)
시대조선중기
본관사천(泗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목내선(睦來善)

[상세내용]

목임일(睦林一)
1646년(인조 24)∼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사백(士伯), 호는 청헌(靑軒). 좌의정 목내선(睦來善)의 아들이다.

1675년(숙종 1) 사마시에 합격, 1678년 통덕랑(通德郞)으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검열이 되었다. 평안도암행어사로 다녀온 바 있으며, 1682년 지평부수찬정언을 거쳐, 이듬해에 수찬정언부교리를 역임하였다. 남인이 득세한 1689년 아버지 목내선좌의정에 오르고, 그는 이조좌랑부응교응교집의승지대사간도승지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세력이 축출당함에 따라 남해현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인 1695년에 풀려났다.

그러나 1701년 민비가 죽자 희빈 장씨(禧嬪張氏)를 중궁으로 올리자고 심단(沈檀)민언량(閔彦良) 등과 더불어 상소를 올렸던 죄로 국모모해사건의 발각과 동시에 남인의 세력이 완전히 축출당할 때 다시 장흥에 원찬(遠竄)되었다.

그뒤 여러 번 구제의 상소가 있은 뒤 1704년에 풀려났다. 그는 비록 관로(官路)에서는 굴곡이 있었으나 당시 왕의 그에 대한 인물평으로는 사람과 물건을 상해(傷害)하지 않는 착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박정자(朴定子)
대표명목임일(睦林一)
임일(林一)
성명목임일(睦林一)
사백(士伯)

성명 : "목임일(睦林一)"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紀年便攷v27故判府事閔鼎重復官賜祭金壽興趙師錫金壽恒南龍翼金錫冑金益勳洪致祥并命復爵○安寘柳會賢命天李義徵鄭維岳睦林一于絶島遠竄張布載李玄逸柳緯漢于極邊金德遠付䖏閔宗道追奪○四月中宮閔氏復位先是備忘記曰敢為伸救廢人者當
記聞v10萬萬絶痛而道一以何心腸有甚慫惥今爲彼藉口之資耶其心所在誠不可測此言一播輿情齊憤請前判書吳道一遠竄答曰睦林一事依啓
記聞v10○正言李東彥上疏吳道一沈檀睦林一三人俱出賊招罪名惟均而第伊時鞫廳過慮其蔓延不先拿究於重經就囚之後彥良未誅之前別其玉石而休辟之乃反經先
龍問門答v1不定豈在位號之定不定也正位有慶先事周詳之慮古今不易之論也尤翁亦上疏言之此固義理之當然也於是李玄紀睦林一李沆李允修李濟民等左右搆揑睦來善權大運閔黯沈榟李觀徵柳命天兪夏益金德遠吳始復等相與鼓煽至於己巳四月
郯述v02睦林一
郯述v04參李敏叙吏議任相元吏郞沈壽亮○行畐副學李翊相應敎申琓本館錄韓泰東李玄紀二人未參朴致道黃玧徐宗泰李思永睦林一李頤命金万埰七人加入
祔廟都監都廳儀軌尙獻以下執事 各加一資 資窮者代加 神輦侍衛右承旨睦林一.右副承旨金龜萬 各熟馬一匹賜給 都承旨沈檀左承
山陵都監儀軌n1-2책 兵曹佐郞金一夔 辛酉二月十五日啓下 兵曹佐郞睦林一 庚申十一月初一日啓下十二月二十日褒貶居中改差代
山陵都監儀軌n1-2책廳前察訪金一夔燔瓦所 別提鄭後僑京郞廳李震殷李禎來睦林一各上 弦弓一張尹世紀金一夔李玄紀各不粧弓一張賜給
果川縣邑誌(京畿道)睦林一 康熙二十六年丁卯十月十四日政除授同月二十一日赴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