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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벌(沈橃)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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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군섭(君涉)
생년1645(인조 23)
졸년1711(숙종 37)
시대조선중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심광사(沈光泗)
조부심액(沈詻)

[상세내용]

심벌(沈橃)
1645년(인조 23)∼1711년(숙종 37).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군섭(君涉). 이조판서 심액(沈詻)의 손자이며, 부친은 심광사(沈光泗)이다.

1675년(숙종 1) 증광시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1677년 2월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다. 그는 남인으로서 같은해 6월 서인의 영수 송시열(宋時烈)의 유배 직후에 전개된 고묘(告廟)에 우의정 허목(許穆)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는 예(禮)를 바로잡은 일을 종묘에 고하는 것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서인을 일망타진하려는 의도가 개재되어 있는 것이었다.

1679년 1월 부제학 이당규(李堂揆)가 홍문록(弘文錄)을 작성할 때 이한명(李漢命)윤의제(尹義濟) 등 15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혔으며, 같은해 6월 도당(都堂)에서 홍문록을 작성할 때에도 역시 포함되었다. 이후 정계에서의 두드러진 활약상은 보이지 않다가, 1689년 희빈장씨(禧嬪張氏)가 낳은 아들을 세자로 삼으려는 숙종에 반대한 송시열 등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정권을 장악한 기사환국 이후 정계에 다시 등장하였다.

같은해 2월 사헌부지평에 임명된 이후 홍문관부수찬수찬부교리교리부응교사헌부집의를 거쳐 의정부사인에 이르렀다. 이후 홍문관의 여러 관직을 역임한 다음 승지를 거쳐 1691년 7월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8월 승지를 거쳐 9월 황해도관찰사에 이르렀다.

1694년 남인이 축출되고 소론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는 갑술환국으로, 그도 대사헌 이규령(李奎齡), 사간 박세준(朴世儁) 등의 탄핵에 의하여 극변(極邊)에 유배되었다가, 1697년 3월에 유배에서 풀려났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집필자]

남인국(南仁國)
대표명심벌(沈橃)
성명심벌(沈橃)

성명 : "심벌(沈橃)"에 대한 용례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