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후재(申厚載)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D6C4C7ACB1636X0 |
자(字) | 덕부(德夫) |
호(號) | 서암(恕庵) |
생년 | 1636(인조 14) |
졸년 | 1699(숙종 25)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평산(平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신항구(申恒耉)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후재(申厚載)
1636년(인조 14)∼1699년(숙종 2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덕부(德夫), 호는 규정(葵亭)‧서암(恕庵).
부친은 현감 신항구(申恒耉)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를 거쳐 같은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갔다가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고 지평‧홍문관부교리 등을 역임한 뒤 1679년(숙종 5)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경신대출척으로 남인들이 제거당할 때 삭직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집권하자 승정원우승지‧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사은 겸 진주주청사(謝恩兼陳奏奏請使)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강화유수‧개성유수‧한성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 소론이 집권하자 여주에 유배되었다.
1697년 석방되었으나 충주 오갑장(鰲甲庄)에 은퇴하여 학문에 전념하다가 여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시문집 『규정집』 7권이 있다.
부친은 현감 신항구(申恒耉)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를 거쳐 같은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갔다가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내고 지평‧홍문관부교리 등을 역임한 뒤 1679년(숙종 5)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경신대출척으로 남인들이 제거당할 때 삭직되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집권하자 승정원우승지‧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사은 겸 진주주청사(謝恩兼陳奏奏請使)의 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강화유수‧개성유수‧한성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가 일어나 소론이 집권하자 여주에 유배되었다.
1697년 석방되었으나 충주 오갑장(鰲甲庄)에 은퇴하여 학문에 전념하다가 여생을 마쳤다.
저서로는 시문집 『규정집』 7권이 있다.
[참고문헌]
顯宗實錄
肅宗實錄
淸選考
星湖文集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肅宗實錄
淸選考
星湖文集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조계찬(趙啓纘)
명 : "후재(厚載)"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
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