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집(嚴緝)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5C4C9D1FFFFB1635X0 |
자(字) | 경지(敬止) |
호(號) | 만회(晩悔) |
시호(諡號) | 정헌(貞憲) |
생년 | 1635(인조 13) |
졸년 | 1710(숙종 36)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영월(寧越)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엄성구(嚴聖耉) |
[상세내용]
엄집(嚴緝)
1635년(인조 13)∼1710년(숙종 3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경지(敬止), 호는 만회(晩悔). 감찰(監察) 엄성구(嚴聖耉)의 아들이다.
1673년(현종 1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678년(숙종 4) 정언이 되고, 부교리‧사간‧집의‧승지 등 주로 삼사(三司) 청화직(淸華職)에 출입하였다.
1696년 개성부 유수에 승진되었다가 도승지로 전임되었다.
1701년 공조판서 때에 장희빈(張禧嬪)을 논죄하였고, 다음해 의정부좌참찬‧예조판서를 역임한 뒤 우참찬으로 있을 때 병으로 치사하고 기사소(耆社所)에 들었다. 기개가 있고 청렴하였으며, 권문을 멀리하고 당쟁을 싫어하여 세인의 칭송을 받았다.
만년에 궁핍한 가운데 와병 사실이 상신(相臣) 서종태(徐宗泰)에게 알려지자 임금이 약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1673년(현종 1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678년(숙종 4) 정언이 되고, 부교리‧사간‧집의‧승지 등 주로 삼사(三司) 청화직(淸華職)에 출입하였다.
1696년 개성부 유수에 승진되었다가 도승지로 전임되었다.
1701년 공조판서 때에 장희빈(張禧嬪)을 논죄하였고, 다음해 의정부좌참찬‧예조판서를 역임한 뒤 우참찬으로 있을 때 병으로 치사하고 기사소(耆社所)에 들었다. 기개가 있고 청렴하였으며, 권문을 멀리하고 당쟁을 싫어하여 세인의 칭송을 받았다.
만년에 궁핍한 가운데 와병 사실이 상신(相臣) 서종태(徐宗泰)에게 알려지자 임금이 약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정헌(貞憲)이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歸鹿集(趙顯命)
歸鹿集(趙顯命)
[집필자]
반윤홍(潘允洪)
자 : "경지(敬止)"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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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