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렴(李之濂)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C9C0B834B1628X0 |
자(字) | 양이(養而) |
호(號) | 치암(恥菴) |
생년 | 1628(인조 6) |
졸년 | 1691(숙종 17)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함평(咸平)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이초옥(李楚玉) |
저서 | 『치암집』 |
[상세내용]
이지렴(李之濂)
1628년(인조 6)∼1691년(숙종 17).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양이(養而), 호는 치암(恥菴). 부위(副尉) 이초옥(李楚玉)의 아들이다. 김집(金集)의 문인이다.
학문에 뛰어나 이름이 떨쳐져 송준길(宋浚吉)‧민진원(閔鎭遠) 등의 추천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사퇴하고, 뒤에 부수(副率)를 잠시 지내고 광릉참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1682년(숙종 8) 청산현감(靑山縣監)으로 부임하여 굶주린 백성의 구제에 힘쓰고, 1687년 흡곡현령(歙谷縣令)이 되어 교학과 풍속의 순화에 노력하였다.
학문뿐만 아니라 시와 글씨도 뛰어났다. 유저로 『치암집』이 있다.
학문에 뛰어나 이름이 떨쳐져 송준길(宋浚吉)‧민진원(閔鎭遠) 등의 추천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사퇴하고, 뒤에 부수(副率)를 잠시 지내고 광릉참봉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1682년(숙종 8) 청산현감(靑山縣監)으로 부임하여 굶주린 백성의 구제에 힘쓰고, 1687년 흡곡현령(歙谷縣令)이 되어 교학과 풍속의 순화에 노력하였다.
학문뿐만 아니라 시와 글씨도 뛰어났다. 유저로 『치암집』이 있다.
[참고문헌]
梅山集
[집필자]
차용걸(車勇杰)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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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