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린(李伯麟)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BC31B9B0B1621X0 |
자(字) | 성서(聖瑞) |
생년 | 1621(광해군 13) |
졸년 | 1667(현종 8)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시만(李時萬) |
외조부 | 권진기(權盡己)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백린(李伯麟)
1621년(광해군 13)∼1667년(현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서(聖瑞).
부친은 관찰사 이시만(李時萬)이며, 모친은 참판 권진기(權盡己)의 딸이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0년(효종 1)에는 태학생으로서 사림의 문란을 가져온 박세채(朴世采)‧김수항(金壽恒) 등의 공관(空館: 捲堂이라고도 하는데 성균관유생들이 불평이 있을 때 일제히 관을 비우는 일)행위에 대하여 이를 바로 밝힐 것을 상소하였다.
1655년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가 되었다.
그뒤 성균관전적을 거쳐 병조‧예조의 좌랑을 역임한 뒤 황해도도사가 되었다.
1664년(현종 5) 사헌부지평이 되었다가, 서경(署經)의 부제(不齊)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고산찰방으로 나갔다. 이어 1667년 개성부경력(開城府經歷)에 부임하였으나 그해 임지에서 병으로 죽었다.
학문에 유난히 독실하였고 효우와 청렴으로 칭송받았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부친은 관찰사 이시만(李時萬)이며, 모친은 참판 권진기(權盡己)의 딸이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0년(효종 1)에는 태학생으로서 사림의 문란을 가져온 박세채(朴世采)‧김수항(金壽恒) 등의 공관(空館: 捲堂이라고도 하는데 성균관유생들이 불평이 있을 때 일제히 관을 비우는 일)행위에 대하여 이를 바로 밝힐 것을 상소하였다.
1655년 춘당대문과(春塘臺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가 되었다.
그뒤 성균관전적을 거쳐 병조‧예조의 좌랑을 역임한 뒤 황해도도사가 되었다.
1664년(현종 5) 사헌부지평이 되었다가, 서경(署經)의 부제(不齊)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고산찰방으로 나갔다. 이어 1667년 개성부경력(開城府經歷)에 부임하였으나 그해 임지에서 병으로 죽었다.
학문에 유난히 독실하였고 효우와 청렴으로 칭송받았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孝宗實錄
顯宗實錄
顯宗改修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顯宗實錄
顯宗改修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대표명 | 이백린(李伯麟) |
성명 | 이백린(李伯麟) |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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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