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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완(李世完)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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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자고(子固)
생년1603(선조 36)
졸년1655(효종 6)
시대조선중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왕실 > 종친
이정(李侹)
처부한준겸(韓浚謙)

[상세내용]

이세완(李世完)
1603년(선조 36)∼1655년(효종 6).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고(子固). 성종의 4대손 영천군(靈川君) 이정(李侹)의 아들이며, 아내는 영돈녕부사 한준겸(韓浚謙)의 딸로 인조의 비 인열왕후(仁烈王后)의 이복동생〔孽妹〕이다.

어려서부터 국량이 탁월하고, 비단옷과 화려한 의복을 입지 않았으며, 의지가 강하고 정의심이 넘쳐 고인(古人)의 풍도가 있었다. 처음에 진원부정(珍原副正)을 제수받았고, 광해군 때 반역을 꾀한 신하를 치죄하였으며,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고자 하는 폐모론이 대두되었을 때는 나이가 어림에도 의연하게 나서서 정도를 주장하다가 몇 번이나 화를 입을뻔하였다.

인조반정 후 특별히 품계를 올려받았고, 1635년(인조 13) 인열왕후가 죽자 향관(享官)으로서 혼전(魂殿)을 지켰다.

병자호란 때는 왕실의 신위를 모시고 먼저 강화도로 들어갔는데, 그때 봉림대군(鳳林大君)과 한 방에 거처하다가, 시국에 대한 대책을 묻자 끝까지 적과의 화친을 반대하고 사신을 남한산성에 보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마침내 봉림대군의 명으로 강을 건너 간신히 행재소에 이르러 대군의 서찰을 전달하였는데, 그때 그의 형 상원군(祥原君) 이상국(李相國)김상용(金尙容)을 따라서 남문에서 죽고, 또 그의 어머니와 아내 및 형수도 그곳에서 자결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가 상(喪)을 받들어 장사를 지내고, 수원의 별장에서 상주 노릇을 하며 몸소 농사를 지어 제수를 마련하였다. 상을 마치자 1635년의 혼전에 대한 노고로 정의대부(正義大夫)에 올라 진원군(珍原君)에 봉하여졌다.

1640년 봉림대군심양(瀋陽)에서 돌아와 인조에게 고하기를 “진원군 일가의 절조있는 죽음은 신이 목도한 바이니 정문을 세워 표창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모두에게 정문이 내려졌다.

그뒤 세상일에 뜻을 두지 않고 항상 때묻은 베옷을 입고 살며 대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인조가 승하하자 또 혼전향관(魂殿享官)이 되어 중의대부(中義大夫)에 올랐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顯宗實錄
肅宗實錄
明齋集

[집필자]

김능하(金綾夏)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