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심지한(沈之漢)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2ECC9C0D55CB1596X0
자(字)자장(子章)
호(號)창주(滄洲)
생년1596(선조 29)
졸년1657(효종 8)
시대조선중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문신 > 문신
심탁(沈倬)
저서『사도(四圖)』
저서『창주집』

[상세내용]

심지한(沈之漢)
1596년(선조 29)∼1657년(효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장(子章), 호는 창주(滄洲).

심탁(沈倬)의 아들이며, 정엽(鄭曄)의 문인이다.

광해군 때 폐모론이 일어나자 아버지와 함께 이를 반대하고, 1618년(광해군 10) 동학유생(東學儒生)으로 조경기(趙慶起) 등 8인과 함께 폐모론을 주도하는 이위경(李偉卿)정조(鄭造)윤인(尹認) 등을 극형에 처하도록 상소하였다가 아버지와 함께 문외출송(門外黜送)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뒤 횡성 산골로 낙향하였다.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1624년(인조 2) 생원시에 합격하고, 1629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학유를 지내고, 뒤에 한림에 들어갔다.

그뒤 사서정언부수찬지평 등의 청요직을 두루 거치고, 1636년의 병자호란 전에 청나라와 절교하고 자강책(自强策)을 강구하여 대비하자고 주장하였으며, 태인현감으로 있을 때 병자호란을 만났다.

호란 후에는 종묘령(宗廟令)을 거쳐 1640년 평창군수가 되었으나, 태인현감 때 왕명 사신을 쫓아버렸다는 혐의를 입어 체직되었다.

1647년 다시 부교리교리겸찬독(兼贊讀) 등의 요직을 거쳤다.

1650년(효종 1)에 응교로서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고, 이어 집의로 억울하게 귀양간 유계(兪棨)의 무죄를 상소하였다.

1653년 홍처후(洪處厚)와 함께 「무일편(無逸篇)」과 「칠월편(七月篇)」을 베껴 병풍으로 만들어 왕에게 바쳐 효종의 총애를 입었으며, 이어 승지가 되었다. 호조병조공조참의를 역임하고 연안부사로 있다가 고향에 돌아가 죽었다.

그는 특히 『주역』 등을 즐겼으며 『시전』『서전』『대학』『주례』의 골자를 따서 『사도(四圖)』를 편찬하여 효종에게 바쳐 상으로 호피(虎皮)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창주집』이 있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孝宗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차문섭(車文燮)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