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득연(申得淵)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0B4DDC5F0B1585X0 |
자(字) | 정오(靜吾) |
호(號) | 현포(玄圃) |
생년 | 1585(선조 18) |
졸년 | ?(미상) |
시대 | 조선중기 |
본관 | 고령(高靈)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신식(申湜)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신득연(申得淵)
1585년(선조 18)∼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정오(靜吾), 호는 현포(玄圃). 대사헌 신식(申湜)의 아들이다.
1603년(선조 36) 생원시에 합격하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성균관전적으로 『선조실록』 편찬의 기사관(記事官)으로 참여하였고, 검열‧정언‧사예‧형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632년(인조 10)에는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그의 아버지가 편찬한 『가례언해』를 간행하였고, 이어서 회답사(回答使)로 후금(後金)에 파견되었다. 다음해 도승지에 임명되었고, 경상좌도양전사(慶尙左道量田使)를 역임한 뒤 세자시강원빈객(世子侍講院賓客)으로 청나라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1643년 그의 생질 이계(李烓)가 명나라와 밀무역한 것을 알고서 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1603년(선조 36) 생원시에 합격하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성균관전적으로 『선조실록』 편찬의 기사관(記事官)으로 참여하였고, 검열‧정언‧사예‧형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632년(인조 10)에는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그의 아버지가 편찬한 『가례언해』를 간행하였고, 이어서 회답사(回答使)로 후금(後金)에 파견되었다. 다음해 도승지에 임명되었고, 경상좌도양전사(慶尙左道量田使)를 역임한 뒤 세자시강원빈객(世子侍講院賓客)으로 청나라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1643년 그의 생질 이계(李烓)가 명나라와 밀무역한 것을 알고서 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大東野乘
仁祖實錄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大東野乘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명 : "득연(得淵)"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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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