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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주(徐景霌)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C11CACBDC8FCB1579X0
자(字)자순(子順)
호(號)송강(松岡)
생년1579(선조 12)
졸년1643(인조 21)
시대조선중기
본관대구(大丘)
활동분야문신 > 문신
서성(徐渻)
정신옹주(貞愼翁主)

[상세내용]

서경주(徐景霌)
1579년(선조 12)∼1643년(인조 21).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자순(子順), 호는 송강(松岡). 본관은 대구(大丘).

선조의 사위이며,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서성(徐渻)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정신옹주(貞愼翁主)와 혼약하였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혼례를 올리지 못하고 선조를 호종하였다.

이듬해 환도한 뒤 혼례를 올려 달성위(達城尉)에 봉해졌다. 정유재란 때는 선조의 총애를 받아 총관 겸 상방제조(摠管兼尙方提調)로서 항상 측근에서 시종하였다.

이때 『선원록(璿源錄)』을 감수한 공로로 통헌대부봉헌대부로 계속 품계가 올랐다. 광해군 때,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에 대한 폐모론이 일어나자, 아버지 서성과 함께 반대하다가 부친은 영해(寧海)로 유배되었고 그 역시 크게 서용되지 못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아버지가 복직되고,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를 호종한 공이 인정되어 숭덕대부로 품계가 오르면서 복제 겸 금화내자제조(服除兼禁火內資提調)를 제수받았다.

1631년(인조 9) 아버지가 죽자 잠시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만년에 다시 상방원(尙方院) 및 관상감(觀象監) 제조총관(摠管)을 겸하였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大東野乘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문기(李文基)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1-01-03大丘徐氏世譜(2003년 간행)를 참고하여 본관을 달성(達城)에서 대구(大丘)로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