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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효준(鄭孝俊)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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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효우(孝于)
호(號)낙만(樂晩)
시호(諡號)제순(齊順)
생년1577(선조 10)
졸년1665(현종 6)
시대조선중기
본관해주(海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흠(鄭欽)

[상세내용]

정효준(鄭孝俊)
1577년(선조 10)∼1665년(현종 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효우(孝于), 호는 낙만(樂晩). 돈녕부판관 정흠(鄭欽)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시명이 높았고, 특히 변려문(騈儷文)에 뛰어났으나 과거에 여러 차례 낙방하다가 늦게서야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613년(광해군 5)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 대북파에 의하여 인목대비(仁穆大妃)폐모론이 대두되었을 때, 어몽렴(魚夢濂)정택뢰(鄭澤雷) 등과 함께 극력 항소하여 이이첨 등의 처형을 주장하였다. 이로 인하여 두 사람은 유배당하였으나 그는 북관에 피신하여 화를 면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에 서용되어 효릉참봉(孝陵參奉)전생서봉사(典牲署奉事)자여도찰방(自如道察訪) 등을 거쳐 1652년(효종 3) 돈녕부도정에 올랐다.

1656년 80세의 나이로 해풍군(海豊君)에 습봉되고 동지돈녕부사가 되었다.

그뒤 아들 다섯이 모두 급제하여 관직에 오른 관계로 김수항(金壽恒)의 주청에 의하여 1663년 판돈녕부사가 되었다. 시호는 제순(齊順)이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顯宗改修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범직(李範稷)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