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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몽렴(魚夢濂)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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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사영(士泳)
호(號)은수당(穩睡堂)
생년1582(선조 15)
졸년1651(효종 2)
시대조선중기
본관함종(咸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어운택(魚雲澤)
조부어계선(魚季瑄)
증조부어숙평(魚叔平)
처부신요(申橈)
처부허완(許完)
외조부이전(李銓)

[상세내용]

어몽렴(魚夢濂)
1582년(선조 15)∼1651년(효종 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사영(士泳), 호는 온수당(穩睡堂).

증조부는 어숙평(魚叔平)이고, 조부는 좌참찬 어계선(魚季瑄)이며, 부친은 사평(司評) 어운택(魚雲澤)이다. 외조부는 종실(宗室) 풍성군(豊城君) 이전(李銓)이고, 처부는 고령신씨 장령(掌令) 신요(申橈)와 양천허씨 병사(兵使) 허완(許完)이다.

장단에 우거하다가 나중에 광양금련촌(金蓮村)에 낙향하였다. 어릴 때부터 자질이 영오(穎悟)하여 경사(經史)에 능하였다.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 이듬해 계축옥사 때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의 사주로 이위경(李偉卿)성하연(成夏衍) 등이 폐모를 주장하는 소를 올리자 여러 유생들과 함께 그들의 이름을 유적(儒籍)에서 삭제하고 처벌을 주장하였다.

또한 8도의 유림에 통문(通文)을 보내 이이첨 등의 처벌을 건의함으로써 대북파의 미움을 받아 1618년 추방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의금부도사에 등용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이괄(李适)의 반란 때는 격문을 띄워 군사를 소모(召募), 토적(討賊)을 모의하였다가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중지하였다.

대륙의 정세가 심상치 않자 솔선 낙향하였고, 병자호란 뒤에는 세상을 등지고 두문불출하였다.

지절(志節)이 탁위(卓偉)하고 언론이 준결(峻潔)하여 한때를 격양(激揚)하였고 광양의 재지사족으로서 성리학적 윤리를 실천하였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수건(李樹健)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2011-09-29魚氏族譜(계사보)를 참고하여 조부를 어계황(魚季璜)에서 어계선(魚季瑄)으로 수정함. 호를 은수당(隱睡堂)에서 온수당(穩睡堂)으로 수정. 증조부, 처부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