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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첩(權怗)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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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정오(靜吾)
생년1573(선조 6)
졸년1629(인조 7)
시대조선중기
본관안동(安東)
활동분야문신 > 문신
권징(權徵)
외조부이효언(李孝彦)

[상세내용]

권첩(權怗)
1573년(선조 6)∼1629년(인조 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오(靜吾).

부친은 병조판서 권징(權徵)이며, 모친은 감찰 이효언(李孝彦)의 딸이다.

1606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616년(광해군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형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618년 인목대비의 폐위를 위한 폐모론의 대두에도 불구하고 그 정청(庭請)에 참여하지 않았다.

1622년 영건도청(營建都廳)에 오른 뒤, 조정의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기 위한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자 병을 핑계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때마침 후금(後金)의 군사가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을 쫓아 평안도 선천까지 들어와 모문룡을 공격하는 등의 일로 서북 국경지방이 불안해지자, 적임자로 천거되어 선천부사로 부임하였다.

이듬해 인조반정 직후 호조참의가 되었으며, 1624년 황해도관찰사로 승진되었으나, 그 이듬해 무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얼마 뒤 판장례원사(判掌隷院事)로 다시 임용되었고, 1627년 후금의 침입으로 왕이 강화도로 피난할 때 호종하였으며, 그해에 형조참판으로 승진하여 주문사(奏聞使)명나라에 가서 후금의 침입을 알렸다.

이듬해 귀국하여 경주부윤으로 전임되었으나 곧 죽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國朝榜目

[집필자]

신해순(申解淳)
대표명권첩(權怗)
성명권첩(權帖), 권첩(權怗)
정오(靖悟)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