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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몽윤(安夢尹)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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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상경(商卿)
생년1571(선조 4)
졸년1650(효종 1)
시대조선중기
본관순흥(順興)
활동분야문신 > 문신
안세복(安世復)
공신호진무공신(振武功臣)

[관련정보]

[상세내용]

안몽윤(安夢尹)
1571년(선조 4)∼1650년(효종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상경(商卿).

부친은 직장(直長) 안세복(安世復)이다.

음보로 군직에 나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을 토벌하고, 선조가 8도에 내린 명에 의하여 부적행위(附敵行爲)를 하며 구날(構捏)을 일삼던 왜역관 김덕회(金德澮)김응관(金應灌)을 목베어 행재소에 보냈다. 전주 분조(分朝)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9년에 부장(部長)으로 창덕궁을 지켰으며 그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옥구현감안동판관 등의 외직을 지내면서 일을 잘 처리하여 함안군수에 승진하고, 1612년(광해군 4) 통정계(通政階)에 올랐다.

이듬해에 우림장(羽林將), 1618년 첨지중추부사, 1622년 자산군수가 되어 조방장(助防將)을 겸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을 계기로 수령들이 거의 쫓겨났으나 그만은 홀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전부우협장(前部右協將)으로 군량보급에 힘쓰고 서울 안현(鞍峴)싸움에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으로 순양군(順陽君)에 봉해졌다.

이듬해에 숙천부사, 1626년 부총관에 이어 김해부사중화부사전라수사 등을 거쳐 1643년 경상우병사가 되고, 1646년 자헌계(資憲階)에 올라 도총관을 겸하였다.

1648년 포도대장, 이듬해에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참고문헌]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이장희(李章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