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이척(李惕)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C774CC99FFFFB1569X0
자(字)경중(敬中)
생년1569(선조 2)
졸년1637(인조 15)
시대조선중기
본관연안(延安)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요신(李堯臣)
조부이탁(李倬)
증조부이대승(李大升)
외조부정응두(鄭應斗)

[상세내용]

이척(李惕)
1569년(선조 2)∼1637년(인조 1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중(敬中). 이대승(李大升)의 증손으로, 조부는 이탁(李倬)이고, 부친은 이요신(李堯臣)이며, 모친은 광해군 당시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갔다가 해로(海路)에서 죽은 정응두(鄭應斗)의 딸이다.

일찍 문음으로 관직에 진출하여 참봉으로 근무하던 1603년(선조 36) 식년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승정원주서에 제수(除授)되었고, 1605년(선조 38) 순변사 이시언(李時言)에게 주는 교서를 어지럽게 휘갈겨 썼다는 이유로 탄핵받았으나, 곧 사헌부감찰에 제수(除授)되었다.

이듬해 병조좌랑예조정랑을 거쳐, 이듬해에는 지평전적지평에 차례로 제수(除授)되어 유희분(柳希奮) 등과 함께 능해군(綾海君) 구성(具宬)의 탄핵에 앞장섰고, 1608년(선조 41) 예조정랑에 올랐다.

배천군수(白川郡守)로 있던 1612년(광해군 4) 김직재(金直哉)의 옥사가 일어나자 김직재 첩의 사위인 황보신(皇甫信)을 체포한 공으로 가자되어 형조참의에 발탁되었고, 그 뒤 훈신으로서 상을 당하여 호상(護喪)의 예를 받았다. 1615년(광해군 7) 성절사중국에 다녀왔고, 이듬해 도총관에 제수(除授)되었다.

1617년(광해군 9) 서궁의 폐비 문제가 일어나자 이에 동조하였고, 1620년(광해군 12) 청도군수(淸道郡守)로 부임한 뒤 술에 빠져 오랫동안 정무를 폐기하였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석흥군(碩興君)으로 봉해졌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仁祖實錄
國朝榜目
燃藜室紀述

[집필자]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