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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언굉(鄭彦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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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여확(汝廓)
호(號)서계(西溪)
생년1569(선조 2)
졸년1640(인조 18)
시대조선중기
본관동래(東萊)
활동분야문신 > 문신
정승조(鄭承祖)
함녕김씨(咸寧金氏)
외조부김염(金恬)
저서『서계문집』

[상세내용]

정언굉(鄭彦宏)
1569년(선조 2)∼1640년(인조 18).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여확(汝廓), 호는 서계(西溪).

부친은 정승조(鄭承祖)이며, 모친은 함녕김씨(咸寧金氏)김염(金恬)의 딸이다.

1603년(선조 36)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0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성균관학유에 제수되었고, 1609년(광해군 1) 학록(學錄)겸 봉상시봉사(奉常寺奉事), 이듬해 학정(學正)박사에 승진되었다.

다음해 승문원주서 겸 춘추관기사관에 이어 성환도찰방(成歡道察訪)성균관전적 등을 지냈다.

1613년 호조정랑에 체직된 뒤 곧 금교도찰방(金郊道察訪)에 전직되었다.

1614년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와서 혼조(昏朝)의 기미가 있으므로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고성군수에 특채되어 그간 혼조로 인하여 퇴폐되었던 군정(郡政)을 일신하였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향리의 동지를 규합하여 의병장이 되어 적을 토벌하기 위하여 문경조령(鳥嶺)에 도착하였으나,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가상히 여겨 군자감정 겸 선공감정(繕工監正)에 배수하였다.

이듬해 청송부사가 되었다가 1631년 예빈시정(禮賓寺正), 이듬해 승문원판교에 각각 제수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굴욕적인 맹세를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낙향하여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저서로는 『서계문집』 2권이 있다.

[참고문헌]

國朝榜目
西溪文集

[집필자]

이동술(李東述)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