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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찬남(韓纘男)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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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경서(景緖)
생년1560(명종 15)
졸년1623(인조 1)
시대조선중기
본관청주(淸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한기(韓箕)

[상세내용]

한찬남(韓纘男)
1560년(명종 15)∼1623년(인조 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서(景緖). 한기(韓箕)의 아들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로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1607년 성균관박사가 되고, 사서정언헌납예조정랑, 지평장령을 역임하였다.

1613년(광해군 5) 부응교가 되어 교리 이창준(李昌俊)과 함께 여러 차례 소를 올려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외할아버지인 김제남(金悌男)의 처벌을 적극 주장하였고, 이어 응교가 되어 춘추관편수관으로서 『선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615년 호조참의사예좌우부승지대사간을 거쳐 이듬해 재차 좌승지가 되어 이이첨(李爾瞻)의 사주를 받아 해주옥사를 일으켰다. 이에 앞서 부응교로 있을 때에 훈련도감의 일을 천단하고 거기에 소속되어 있던 공장(工匠)들을 사사로이 부렸다고 하여 언관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617년 도승지로 승진하고, 1620년 대사헌을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으나,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주살(誅殺)되었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光海君日記
國朝榜目
足懲錄
我我錄

[집필자]

이태진(李泰鎭)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