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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로(成輅)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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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중임(重任)
호(號)삼일당(三一堂)
호(號)잠암(潛巖)
생년1550(명종 5)
졸년1615(광해군 7)
시대조선중기
본관창녕(昌寧)
활동분야문학 > 문인
성영국(成永國)
전주최씨(全州崔氏)
외조부최언청(崔彦淸)
저서『석전유고』

[상세내용]

성로(成輅)
1550년(명종 5)∼1615년(광해군 7). 조선 중기의 문인.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중임(重任), 호는 석전(石田)삼일당(三一堂)잠암(潛巖).

양주에서 살았다. 부친은 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 성영국(成永國)이며, 모친은 전주최씨(全州崔氏)제용감부봉사(濟用監副奉事) 최언청(崔彦淸)의 딸이다. 정철(鄭澈)의 문인이다.

1570년(선조 3)에 진사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서 공부하였다. 뒤에 사옹원(司饔院)제릉(濟陵)참봉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부임하지 않았다. 스승 정철의 잦은 유배를 본 그는 벼슬을 싫어하였고, 또 동문인 권필(權韠)의 죽음을 보고서 더욱 세상과는 인연을 끊었으며, 지은 시고(詩藁)마저 모두 태워버렸다.

편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임진왜란 때에는 어머니가 눈병으로 앞을 못 보고 다리가 아파 걸음을 걷지 못하자, 어머니를 등에 업고 강도(江都)까지 가서 배를 얻어 호남에 피신하여 난을 면하였다.

친구의 아들이 포로가 되었으나 속환(贖還)할 돈이 없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노자를 털어 구하여준 일도 있다. 좌우에 구용(九容)과 구사(九思)를 써붙이고 일동일정을 그에 맞게 하였으나, 만년에 세상을 비관하여 술과 시로써 세월을 보냈다.

저서로는 『석전유고』 2권이 있다.

[참고문헌]

石田遺稿

[집필자]

김재렬(金在烈)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