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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복(金慶福)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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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백수(伯綏)
시호(諡號)장의(壯毅)
생년1550(명종 5)
졸년1622(광해군 14)
시대조선중기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무신 > 무신
김수경(金守經)

[상세내용]

김경복(金慶福)
1550년(명종 5)∼1622년(광해군 14).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수(伯綏).

부친은 만호 김수경(金守經)이다.

1580년(선조 13) 무과에 급제하여 순변공(巡邊公)이 되었다. 함경도 쌍성(雙城)영인(寧仁)에서 대대로 살았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오랑캐와 싸워 전공을 세웠다.

1583년 이탕개(尼湯介)가 침입하자 변방을 순무(巡撫)하고 힘써 싸워 적을 물리쳤다. 이것이 조정에 알려져 북평사(北評事)로 승진되었다.

그뒤 장련현감(長連縣監)을 거쳐, 1585년 이성현감(利城縣監)이 되었다.

이때에 전호수(錢胡數)가 변경을 침범하자 북평사 이일(李鎰)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막았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북평사 정문부(鄭文孚)가 의병을 일으키자, 건원권관(乾原權管)으로 정현룡 등과 함께 이붕수의 집에 모여 정문부를 추대해서 맹주(盟主)로 삼고, 그는 선봉장이 되어 국경인(鞠景仁)을 유인하여 죽였다.

그뒤 종성부사영원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영흥정충사(精忠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장의(壯毅)이다.

[참고문헌]

宣祖實錄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정오룡(鄭旿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