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김남택(金南澤)

[요약정보]

UCIG002+AKS-KHF_13AE40B0A8D0DDU9999X0
호(號)손재(遜齋)
호(號)성수(聖洙)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함창(咸昌)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원비(金元庇)
증조부김요(金鐃)

[상세내용]

김남택(金南澤)
생졸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호는 손재(遜齋)성수(聖洙)이며, 본관은 함창(咸昌)이다.

증조부는 함녕군(咸寧君) 강촌(江村) 김요(金鐃)이며, 부친은 태중대부(太中大夫) 김원비(金元庇)이다.

성격이 준엄(峻嚴)하여 위언(危言)으로 항소(抗疏)하기를 좋아하였으며, 목은(牧隱) 이색(李穡)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402년(태종 2) 수찬(修撰)정랑(正郞)사간(司諫)을 거쳐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지냈다. 1408년(태종 8)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에 발탁되었고, 1425년(세종 7) 예조판서(禮曹判書)에 보직되었다.

만년에는 동생 형조판서(刑曹判書) 김남중(金南重)과 함께 경상남도 하동(河東)에서, 다시 전라북도 장수(長水) 화산(華山) 북쪽 침령(砧嶺) 아래로 퇴거하여 유학 진흥을 위해 진력하였다.

방촌(厖村) 황희(黃喜)의 찬(贊)에 “군자가 천의(天意)를 체득하고 철인(哲人)은 사기(事機)를 살폈도다! 만약 시우(時雨)의 윤택이 있다면 만물은 스스로 빛나리라”라고 하였다.

1828년(순조 28) 지방유림의 공의로 월강서원(月岡書院: 장수군 계내면 월강리 562 소재)을 창건하여 배향(配享)하였는데,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1948년 복설(復設)되었다.

[참고문헌]

임실군지
전라문화의 맥과 전라북도인물

[집필자]

김동섭
수정일수정내역
2009-09-302009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