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검색 표제어 전체
검색
임건(任楗)

[요약정보]

UCIG002+AKS-KHF_12C784AC74FFFFU9999X0
자(字)사방(士防)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풍천(豊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임유겸(任由謙)

[상세내용]

임건(任楗)
생졸년 미상.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사방(士防).

임유겸(任由謙)의 아들이다. 송당(松堂) 박영(朴英)에게서 공부하였다. 학식으로써 이름이 났고, 1519년(중종 14) 기묘(己卯)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 53위를 하였다. 관직은 풍저창수(豊儲倉守)에 이르렀다. 임건의 학술은 바르고 곧았으며 도량은 크고 원대하였다. 말을 하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반드시 처음과 끝을 생각하였다. 그의 사려깊은 행동을 알 수 있는 두 가지 일화가 전한다. 1530년(중종 25) 경인년과 신묘년 사이에 여러 소인들이 동궁을 돕는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날로 방자하여 갔는데, 특히 김안로(金安老)는 유배지에서도 몰래 주동을 하고, 임금의 부름을 받아 조정에 돌아온 뒤로는 점차 심하여졌다.

『연려실기술』 「중종조 기사본말」에 의하면, 1530년(중종 26) 겨울에 임건(任楗)과 교분이 두터운 사간 박소대사간 권예, 정언 채무택과 함께 김안로를 내쫓기를 의논하고 다음 날 임금께 아뢰기로 약속하였다. 임건이 그 두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를 물은 후에야 박소채무택김안로와 한패인 줄을 알고, 바로 권예의 집을 찾아갔으나 채무택이 이미 권예와 한 마음이 된 후였고, 이튿날 박소가 패하였다.

이때 좌상 이행김안로를 끌어 들였다가 뒤에는 후회하여 우상 김극성(金克成)판서 유여림(兪汝霖)과 함께 육조를 거느리고 임금께 아뢰려하자 임건의 형 임추(任樞)가 그들과 함께 가려 하였다. 그러나 이 일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아우 임건의 말을 쫓아 독한 술을 마시고 몹시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후에 이행이 패하였다. 임추(任樞)는 여러 아우 중에 임건을 두고 “사방(士防)은 나의 스승이다.”라고 하며 칭찬하였다.

[참고문헌]

東儒師友錄
燃藜室記述
朝鮮人名辭書

[집필자]

이원배
수정일수정내역
2008-12-312008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