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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동(洪逸童)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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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일휴(日休)
호(號)마천(麻川)
생년?(미상)
졸년1464(세조 10)
시대조선전기
본관남양(南陽[唐])
활동분야문신 > 문신
홍상직(洪尙直)
저서『마천집』
공신호원종공신

[상세내용]

홍일동(洪逸童)
미상∼1464년(세조 10).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唐]). 자는 일휴(日休), 호는 마천(麻川).

절도사 홍상직(洪尙直)의 아들이다.

1442년(세종 24) 한학훈도(漢學訓導)로 재직 중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돈녕부부승으로 승진하고, 같은해 사헌부로부터 강이관(講肄官)으로서 여러 해에 걸친 한어(漢語)강습에 전력을 하지 않았다는 탄핵을 받고 장(杖) 80의 형을 받고 파직되었다.

그뒤 세종 말에서부터 문종 초에 우정언을 지내고, 1453년(단종 1) 선공감판관, 이듬해 개천군사(价川郡事)를 역임하고, 1454년 좌헌납이 되었다.

1455년(세조 1) 주부로 재직 중 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1457년 부지승문원사(副知承文院事)로서 사은사압물관(謝恩使押物官)이 되어 사행중 문과중시에 급제하였는데, 지평 김기(金琦)로부터 사행중에 무단히 귀환하여 중시에 응시하였고, 응시한 뒤에는 아뢰지 않고 귀임하였으며, 급제한 뒤에는 명소(命召)하였으나 응하지 않고 그대로 부명(赴明)하였다고 탄핵을 받았으나 용서받았다.

1459년 판승문원사 재직중에 칙서의 내용을 누설하였다는 혐의로 의금부에 하옥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461년 호조참판으로서 하성절 및 천추사(賀聖節及千秋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고, 1462년 인순부윤(仁順府尹)으로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63년 행상호군이 되고, 명승지를 유람시키라는 세조의 명을 받아 선위사(宣慰使)의 직함을 띠고 유람하던 중 홍주에서 과음하여 죽었다.

성품이 호방하고 소탈하였으며, 시와 풀피리에 능하여 명성이 있었다.

저서로는 『마천집』이 있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端宗實錄
世祖實錄
新增東國輿地勝覽
國朝榜目
燃藜室記述
筆苑雜記
海東名臣錄

[집필자]

한충희(韓忠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