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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金汶)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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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윤보(潤甫)
호(號)서헌(西軒)
생년?(미상)
졸년1448(세종 30)
시대조선전기
본관언양(彦陽)
활동분야문신 > 문신
김복생(金復生)
공신호원종공신(原從功臣)

[상세내용]

김문(金汶)
미상∼1448년(세종 30).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윤보(潤甫), 호는 서헌(西軒).

김복생(金復生)의 아들이다. 모친은 무당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학문에 증진하여, 1420년(세종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에 들어갔다.

1435년 문명(文名)으로 집현전수찬(集賢殿修撰)에 뽑히었고, 이듬해 집현전부교리, 그 이듬해 집현전직제학으로 승진하였다.

이때 세종이 저화(楮貨)를 개용(改用)하려 하자 이에 대한 고제(古制)를 상고하여 진언하였다.

1446년에 집현전이 항소(抗疏)하여 시사(時事)를 논할 때와 정창손(鄭昌孫)의 방면을 청하는 집현전의 모임에 참여하지 않아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1448년 사서(四書)를 번역하는 사업을 주관한 공으로 승자(陞資)되면서 발탁이 예상되었으나 갑자기 죽었다.

1455년(세조 1)에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추록되었다. 경사자집(經史子集)의 모든 분야에 밝았고, 특히 사학에 정통하여 궁중에 기거하면서 세종 때의 문운(文運)에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정음청(正音廳)의 국문자(國文字) 보급계획에는 최만리(崔萬理) 등과 함께 반대하였다.

저서로는 왕명에 의해 이계전과 함께 펴낸 『자치통감훈의(資治通鑑訓義)』신석조(辛碩祖) 등과 함께 편찬한 『의방유취(醫方類聚)』가 있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世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한충희(韓忠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