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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작(李忠綽)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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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군정(君貞)
호(號)낙빈(洛濱)
생년1521(중종 16)
졸년1577(선조 10)
시대조선전기
본관전주(全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휘(李徽)
출신지직산(稷山)

[상세내용]

이충작(李忠綽)
1521년(중종 16)∼1577년(선조 10). 조선 중기의 문신‧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정(君貞), 호는 졸암(拙庵) 또는 낙빈(洛濱). 직산(稷山) 출신. 세종의 제4남 임영대군(臨瀛大君) 구(璆)의 후손이며, 당은부수(唐恩副守) 이휘(李徽)의 아들이다.

1559년(명종 14)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62년 저작에 재직 중 효행으로 형조좌랑으로 특진되었으며, 사헌부장령 때 중 보우(普雨)의 죄상을 논핵하였다가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또한, 일찍이 을사사화 때의 소윤파인 이기(李芑)정순붕(鄭順朋)임백령(林百齡) 등의 보익공신(保翼功臣)호를 삭탈하는 전지(傳旨)를 올려 간흉(奸凶)의 죄상을 폭로하기도 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죽자 3년 동안 죽을 먹으며 피눈물을 흘리다가 마침내 실명하기에 이르렀다. 탈상한 뒤 승지에 제수되었는데 실명한 자를 왕 가까이 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대하니 명종이 교서를 내려 “사람들은 그의 눈을 미워하지만 나는 그의 눈을 사랑한다.”라고 하여 임금의 그에 대한 사랑이 매우 깊음을 나타내었다.

벼슬은 충청도관찰사까지 승진하였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宣祖實錄
國朝榜目
稷山邑誌
輿地圖書
增補文獻備考

[집필자]

조계찬(趙啓纘)
대표명이충작(李忠綽)
충작(忠綽)
성명이충작(李忠綽)
군정(君貞)
낙빈(洛濱), 졸암(拙菴)

명 : "충작(忠綽)"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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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乘v10百甞天雨著木屐蒯索兵曺佐郞于路下馬入站舎而話欲及夕點而路濘履索絶乞借鞍馬友乃許之密令馬前皀隷於路呼唱忠綽乃赤脚垂馬而去皀隷徑出而呼於路忠綽不之禁直入泮宫泮宫之友望見大笑之忠綽傍若無人後登第未久而慈親下世忠
野乘v10馬友乃許之密令馬前皀隷於路呼唱忠綽乃赤脚垂馬而去皀隷徑出而呼於路忠綽不之禁直入泮宫泮宫之友望見大笑之忠綽傍若無人後登第未久而慈親下世忠綽悲號日夜終至喪一明旣貴每說貪賤時事未甞不思親雪涕觀者莫不動色承㫖近侍
野乘v10慈親下世忠綽悲號日夜終至喪一明旣貴每說貪賤時事未甞不思親雪涕觀者莫不動色承㫖近侍之官古不以渺目人除之忠綽以孝喪明獨拜承㫖
野乘v10入站舎而話欲及夕點而路濘履索絶乞借鞍馬友乃許之密令馬前皀隷於路呼唱忠綽乃赤脚垂馬而去皀隷徑出而呼於路忠綽不之禁直入泮宫泮宫之友望見大笑之忠綽傍若無人後登第未久而慈親下世忠綽悲號日夜終至喪一明旣貴每說貪賤時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