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진(李光軫)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74AD11C9C4B1513X0 |
자(字) | 여임(汝任) |
호(號) | 금시당(今是堂) |
생년 | 1513(중종 8) |
졸년 | 1566(명종 21)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여주(驪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이원(李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이광진(李光軫)
1513년(중종 8)∼1566년(명종 21).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여임(汝任), 호는 금시당(今是堂).
이행(李行)의 후예로, 진사 이원(李遠)의 아들이다.
1540년(중종 35)에 생원에 합격하고,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9년 봉교를 거쳐 전적이 되어 『중종실록』‧『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병조의 좌랑‧정랑을 지냈다.
이어 헌납‧장령‧사간을 거쳐 좌부승지에 이르렀고, 그뒤 고향에 돌아가 산수를 즐기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지성으로 모셔 효자로 알려졌고, 김극일(金克一)‧이정(李楨)‧노정(盧楨) 등과 도의로써 사귀었다. 유학자로 널리 알려져 1564년 사유(師儒)로 뽑혔다.
이행(李行)의 후예로, 진사 이원(李遠)의 아들이다.
1540년(중종 35)에 생원에 합격하고, 1546년(명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49년 봉교를 거쳐 전적이 되어 『중종실록』‧『인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고 병조의 좌랑‧정랑을 지냈다.
이어 헌납‧장령‧사간을 거쳐 좌부승지에 이르렀고, 그뒤 고향에 돌아가 산수를 즐기며 학문에 전념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지성으로 모셔 효자로 알려졌고, 김극일(金克一)‧이정(李楨)‧노정(盧楨) 등과 도의로써 사귀었다. 유학자로 널리 알려져 1564년 사유(師儒)로 뽑혔다.
[참고문헌]
明宗實錄
國朝榜目
嶺南人物考
國朝榜目
嶺南人物考
[집필자]
유병용(兪炳勇)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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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