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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극일(金克一)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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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용협(用協)
호(號)모암(慕庵)
시호(諡號)효절(孝節)
생년?(미상)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김해(金海)
활동분야충효열 > 효자‧효녀
김서(金湑)
처부이간(李暕)

[상세내용]

김극일(金克一)
생졸년 미상. 조선 초기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용협(用協), 호는 모암(慕庵). 의흥현감(義興縣監) 김서(金湑)의 아들이며, 부인은 한성부윤 이간(李暕)의 딸이다.

어릴 때부터 조부모와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했고, 장성한 뒤에는 장인의 간곡한 사관요청이 있었으나, 양친의 봉양을 이유로 거절하고 성심을 다하여 봉양하는 등 효행으로 명성을 떨쳤다.

또한, 아들 김맹(金孟)은 물론 손자 김준손(金駿孫)김기손(金驥孫)김일손(金馹孫)의 훈회에도 정성을 기울여 이들 모두가 문과에 급제할 수 있는 학식과 절행으로 명성을 떨치는 토대를 이루게 하였다.

세종청도군수 이기(李掎)의 보고에 따라 효자정려(孝子旌閭)가 건립되었고, 1482년(성종 13) 김종직(金宗直)이 찬한 효자문비가 다시 건립되었다.

청도의 자계서원(紫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사시(私謚)는 효절(孝節)이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집필자]

한충희(韓忠熙)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