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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몽규(李夢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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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창서(昌瑞)
호(號)청천당(聽天堂)
생년1510(중종 5)
졸년1563(명종 18)
시대조선전기
본관경주(慶州)
활동분야사인
이린(李磷)
생부이인신(李仁臣)
생모광주반씨(光州潘氏)

[상세내용]

이몽규(李夢奎)
1510년(중종 5)∼1563년(명종 18). 조선 전기의 사인.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창서(昌瑞), 호는 천휴당(天休堂)청천당(聽天堂).

조부는 판관(判官)을 지냈으며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된 이성무(李成茂)이다. 부친은 주부(注簿)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된 통훈대부(通訓大夫) 이인신(李仁臣)이다. 모친은 광주반씨(光州潘氏)절도사(節度使) 반희(潘熙)의 딸이다.

종실이었던 이모부 흥녕부정(興寧副正) 이린(李磷)이 아들이 없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그의 양자로 들어갔다. 1540년(중종 35) 경자식년사마시(庚子式年司馬試)에 생원 3등으로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에 들어갔으나, 얼마 있지 않아 나왔다. 1547년(명종 2) 처가의 별장이 있는 보령(保寧)으로 이주하였다. 그곳에 서실을 짓고 천휴(天休)라 명한 후에 전원에 묻혀 오직 독서와 시 짓기에 전념하였다. 이단을 배척하여 평소 풍수지리사상과 불교 및 무당을 강하게 비판하였다고 한다.

어려서 눌재(訥齋) 박증영(朴增榮)의 기대를 샀으며, 성장하여서는 한 마을의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과 교류하였다. 생부와 양부 모두에게 지극한 효성을 보여 사람들의 큰 인망을 얻었다고 전한다. 1563년(명종 18) 병을 얻어 그 해 6월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國朝人物考

[집필자]

고윤수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