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趙昱)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2C870C6B1FFFFB1498X0 |
자(字) | 경양(景陽) |
호(號) | 보진재(葆眞齋) |
시호(諡號) | 문강(文康) |
생년 | 1498(연산군 4) |
졸년 | 1557(명종 12)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평양(平壤) |
활동분야 | 학자 > 유생 |
부 | 조수함(趙守諴) |
모 | 전주이씨(全州李氏) |
외조부 | 이래(李徠) |
저서 | 『용문집』 |
[상세내용]
조욱(趙昱)
1498년(연산군 4)∼1557년(명종 12).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평양(平壤). 자는 경양(景陽), 호는 용문(龍門)‧보진재(葆眞齋).
부친은 판관 조수함(趙守諴)이며, 모친은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춘양군(春陽君) 이래(李徠)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조광조(趙光祖)‧김식(金湜)을 사사하면서 학문연마에 힘썼다. 기묘사화 때 두 스승에 계루되었으나 연소하다고 하여 화를 면하였다.
그뒤 형인 조성(趙晟)과 함께 삭령에 집을 짓고 학문을 강론하며 지냈는데, 세상사람들은 그들을 정호(程顥)‧정이(程頤)형제에 비겨 칭송하였다. 뒤에 선원전(璿源殿)‧순릉(順陵)‧영릉(寧陵) 등의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였다. 어머니가 죽은 뒤 3년상을 마치고 용문산(龍門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는데, 학문이 알려져 용문선생이라 일컬어졌다.
명종 때 성수침(成守琛)‧조식(曺植) 등과 함께 천거되어 내섬시주부(內贍寺主簿)가 제수되었고, 이듬해 장수현감에 이르렀다.
시문과 서화에 능하였으며, 서경덕(徐敬德)‧이황(李滉)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이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용문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용문집』이 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부친은 판관 조수함(趙守諴)이며, 모친은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춘양군(春陽君) 이래(李徠)의 딸이다.
1516년(중종 11)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조광조(趙光祖)‧김식(金湜)을 사사하면서 학문연마에 힘썼다. 기묘사화 때 두 스승에 계루되었으나 연소하다고 하여 화를 면하였다.
그뒤 형인 조성(趙晟)과 함께 삭령에 집을 짓고 학문을 강론하며 지냈는데, 세상사람들은 그들을 정호(程顥)‧정이(程頤)형제에 비겨 칭송하였다. 뒤에 선원전(璿源殿)‧순릉(順陵)‧영릉(寧陵) 등의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였다. 어머니가 죽은 뒤 3년상을 마치고 용문산(龍門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는데, 학문이 알려져 용문선생이라 일컬어졌다.
명종 때 성수침(成守琛)‧조식(曺植) 등과 함께 천거되어 내섬시주부(內贍寺主簿)가 제수되었고, 이듬해 장수현감에 이르렀다.
시문과 서화에 능하였으며, 서경덕(徐敬德)‧이황(李滉) 등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였다. 이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용문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용문집』이 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참고문헌]
海東名臣錄
龍門集
龍門集
[집필자]
윤혁동(尹爀東)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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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