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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민(李希閔)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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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효옹(孝翁)
호(號)추계(秋溪)
생년1490(성종 21)
졸년?(미상)
시대조선전기
본관합천(陜川)
활동분야문신 > 문신

[상세내용]

이희민(李希閔)
1490년(성종 21)∼미상.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효옹(孝翁), 호는 추계(秋溪).

공조판서 이윤검(李允儉)의 아들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이다.

1510년(중종 5) 진사가 되고, 151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이듬해 정자를 거쳐 지평이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지평으로 있을 때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외람되게 기록된 사람을 공신에서 삭제할 것을 논핵하였다. 기묘사화가 일어나던 날 밤, 이연경(李延慶)권장(權檣)과 함께 궐문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관직이 이미 삭탈되었다 하여 제지를 당하였다.

그는 경연청(經筵廳)에 들어가 영상에게 고하기를, “사건이 갑자기 생기고 관직은 이미 삭탈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시종반열(侍從班列)에 있는 몸으로 이런 큰 변을 보고 모르는 체하고 물러설 수 없습니다.

또, 좌우에 사필(史筆)을 잡은 자가 없으면 국가대사가 민멸(泯滅)되어 전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민망스럽습니다.”라고 하였다.

영상이 봉교 조구령(趙九齡)채세영(蔡世英)권예(權輗)를 시켜 전과 같이 사건을 기록하도록 하였다. 그해 12월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인 선산에 돌아가서 살았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燃藜室記述
大東野乘

[집필자]

김해영(金海榮)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