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손(沈思遜)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2ECC0ACC190B1493X0 |
자(字) | 양경(讓卿) |
생년 | 1493(성종 24) |
졸년 | 1528(중종 23)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풍산(豊山)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심정(沈貞) |
[관련정보]
[상세내용]
심사손(沈思遜)
1493년(성종 24)∼1528년(중종 2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경(讓卿). 좌의정 심정(沈貞)의 아들이다.
1513년(중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51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을 거쳐 예문관에 들어가 사관(史官)으로 오래 있으면서 사실대로 기록하였다.
1523년 비변사낭관으로 서북면의 야인정벌에 공을 세우고, 예조좌랑‧사간원정언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어서는 군무에 숙달함을 인정받아 중대한 일은 반드시 도맡아 처리하였다.
홍문관에 들어가 수찬‧응교를 지내고, 1525년 경상우도어사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전한‧직제학을 역임하였다.
1528년 다시 서북 변경의 야인들의 준동이 심해지자 당상관에 올라 만포진첨절제사가 되어 변방방어에 정력을 쏟다가, 야인의 기습을 받아 살해되었다. 그의 나이 겨우 36세로서, 중종은 명신을 잃은 것을 매우 슬퍼하였다.
1513년(중종 8) 사마시에 합격하고, 151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을 거쳐 예문관에 들어가 사관(史官)으로 오래 있으면서 사실대로 기록하였다.
1523년 비변사낭관으로 서북면의 야인정벌에 공을 세우고, 예조좌랑‧사간원정언을 거쳐 병조정랑이 되어서는 군무에 숙달함을 인정받아 중대한 일은 반드시 도맡아 처리하였다.
홍문관에 들어가 수찬‧응교를 지내고, 1525년 경상우도어사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전한‧직제학을 역임하였다.
1528년 다시 서북 변경의 야인들의 준동이 심해지자 당상관에 올라 만포진첨절제사가 되어 변방방어에 정력을 쏟다가, 야인의 기습을 받아 살해되었다. 그의 나이 겨우 36세로서, 중종은 명신을 잃은 것을 매우 슬퍼하였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人物考
[집필자]
박천규(朴天圭)
명 : "사손(思遜)"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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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