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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운(柳雲)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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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종룡(從龍)
호(號)항재(恒齋)
호(號)성재(醒齋)
시호(諡號)문경(文敬)
생년1485(성종 16)
졸년1528(중종 23)
시대조선전기
본관문화(文化)
활동분야문신 > 문신
유공좌(柳公佐)
저서『진수해범(進修楷範)』

[상세내용]

유운(柳雲)
1485년(성종 16)∼1528년(중종 2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종룡(從龍), 호는 항재(恒齋) 또는 성재(醒齋).

사지(司紙) 유공좌(柳公佐)의 아들이다.

1501년(연산군 7) 진사가 되고 1504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 1514년(중종 9)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1518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정사를 돌보지 않고 기생들과 술만 마신다고 하여 탄핵을 받아 동지중추부사로 전직되었다. 이어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남곤(南袞)에 의하여 대사헌이 되었다.

그러나 남곤일당에게 협력하지 않고 도리어 대간들을 거느리고 청하기를 “전하께서 다시 광조(光祖)를 쓰시어 임금과 신하가 옛날과 같으면 신등이 마땅히 직에 나아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청컨대 신들을 죽여서 간인(奸人)들의 마음을 쾌하게 하소서.”라고 하여 조광조(趙光祖)를 구원하고자 하다가 파직당하였다.

그뒤 향리에 묻혀 술로 울분을 달래다 죽었다. 시풍이 호탕하여 한때 명성이 높았다.

편저로는 『진수해범(進修楷範)』 2권 2책이 있는데, 이 책은 1514년(중종 14) 옛 경전과 사첩(史牒) 및 구류제가(九流諸家)의 설을 섭렵하고 진덕수업(進德修業)에 필요한 문구를 뽑아 간행한 것이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燃藜室記述

[집필자]

김용덕(金龍德)

명 : "운(雲)"에 대한 용례

전거용례
震史記略v2士結黨欲除文臣之語因共議以爲如此則將大變自朝廷如此爲之則於光祖等爲福也今玆之事乃朝廷遠慮欲使安靜之也竟被劾而去○二十一日傳曰予不知人用舍紕繆趙光祖等八人交相渧締結詭激成習歸於亂政固當按律治罪而第念是前
大東彙纂v5立俄而拜雲爲承旨速令入對上出御便殿雲佩釰趨入珽止之曰雖有急史官則不可不與攀雲帶欲共入雲擊珽臂而入未幾出袖中小紙授判義禁長坤曰御筆也此人等卽下禁府乃自任瑞麟珽構及應敎奇遵修撰沈達源等也皆方入直俄而大司憲
大東彙纂v5曹參知成雲等張燭而坐軍士環立俄而拜雲爲承旨速令入對上出御便殿雲佩釰趨入珽止之曰雖有急史官則不可不與攀帶欲共入雲擊珽臂而入未幾雲出袖中小紙授判義禁長坤曰御筆也此人等卽下禁府乃自任瑞麟珽構及應敎奇遵修撰沈
大東彙纂v5兵曹判書李長坤戶曹判書高荊山花川君沈貞兵曹參知成雲等張燭而坐軍士環立俄而拜雲爲承旨速令入對上出御便殿佩釰趨入珽止之曰雖有急史官則不可不與攀雲帶欲共入雲擊珽臂而入未幾雲出袖中小紙授判義禁長坤曰御筆也此人
靑野만集v3賤而好自專生乎今之世反古之道未有不災及其身者也宜乎子之不免也子今年少正好讀書努力自愛至京亦救光祖等與等皆罷黃季沃牧使㻶之子初與李若水上疏伸冤至於繫獄光祖等旣竄群小得志季沃迎合時論與尹世貞李來上疏請誅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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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