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세순(成世純)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131C138C21CB1463X0 |
자(字) | 태순(太純) |
시호(諡號) | 사숙(思肅) |
생년 | 1463(세조 9) |
졸년 | 1514(중종 9)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창녕(昌寧)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성충달(成忠達) |
[상세내용]
성세순(成世純)
1463년(세조 9)∼1514년(중종 9).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태순(太純). 현령 성충달(成忠達)의 아들이다.
1492년(성종 23)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을 거쳐 시강원사서‧형조정랑‧홍문관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497년(연산군 3)에 교리가 되었고 그뒤 응교‧전한‧동부승지‧대사간‧우승지‧사간‧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이때 연산군이 형벌을 남발하여 무고하게 해치자 간관으로서 이에 대하여 과감하게 직언하였다.
1505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호조참판에 임명되었고, 다음해에 명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왔다. 중종이 즉위한 뒤에 한성부좌윤‧대사헌‧공조참판‧충청도관찰사‧호조참판‧형조참판‧이조참판‧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민첩하고 국량(局量)이 넓었으며 조그만 허물도 용납하지 않았다. 시호는 사숙(思肅)이다.
1492년(성종 23) 별시문과에 갑과로 급제, 한성부참군(漢城府參軍)을 거쳐 시강원사서‧형조정랑‧홍문관부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497년(연산군 3)에 교리가 되었고 그뒤 응교‧전한‧동부승지‧대사간‧우승지‧사간‧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이때 연산군이 형벌을 남발하여 무고하게 해치자 간관으로서 이에 대하여 과감하게 직언하였다.
1505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호조참판에 임명되었고, 다음해에 명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왔다. 중종이 즉위한 뒤에 한성부좌윤‧대사헌‧공조참판‧충청도관찰사‧호조참판‧형조참판‧이조참판‧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성품이 민첩하고 국량(局量)이 넓었으며 조그만 허물도 용납하지 않았다. 시호는 사숙(思肅)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燕山君日記
中宗實錄
國朝榜目
國朝人物考
[집필자]
이종호(李棕浩)
대표명 | 성세순(成世純) |
명 | 세순(世純) |
성명 | 성세순(成世純) |
시호 | 사숙(思肅), 사숙공세순(思肅公世純) |
자 | 태순(太純) |
명 : "세순(世純)"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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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