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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거(李云秬)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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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字)술조(述祖)
생년1455(세조 1)
졸년1525(중종 20)
시대조선전기
본관성주(星州)
활동분야문신 > 문신
이집(李諿)
조부이정녕(李正寧)

[상세내용]

이운거(李云秬)
1455년(세조 1)∼1525년(중종 20).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술조(述祖).

태종의 부마 이정녕(李正寧)의 손자이며, 우찬성 이집(李諿)의 아들이다. 타고난 성품이 굳세고 밝았다.

1483년(성종 14) 사마시에 합격하여 제용감참봉에 기용되었다. 이어서 봉사직장주부를 거쳐 호조공조좌랑을 지냈다.

1488년 왕이 선농단(先農壇)에 친제할 때 제헌관의 찬자(贊者)가 되어 의식의 진행을 도왔다.

1492년 지평이 되었으나 왕에게 말을 삼가지 아니한 일 때문에 판관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이어서 경기충청황해를 제외한 5도의 경차관(敬差官)이 되어 말썽이 많은 전정(田政)을 점검하고 돌아와서 형조정랑을 거쳐 첨정에 올랐다.

1504년(연산군 10) 광주목사를 지내고 이어서 진주목사를 지냈는데, 해이해진 민심을 수습하고 학교를 권장하며 농업을 진흥시켜 현저한 치적을 남겼다.

1506년 임사홍(任士洪) 등 권간의 미움을 사서 제주목사로 좌천되었다가 9월 중종반정으로 소환되어 돌아오는 길에 추자도(楸子島)에서 왜구를 만나 일행이 모두 죽음을 당하였으나 그는 무사히 돌아왔다.

그뒤 수원남원남양연안안동 등 5주의 부사를 역임하고 돌아와서 동지돈녕부사에 이르렀다. 사람됨이 강직하고 거리낌이 없어 임금 앞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을 잘하였다. 따라서, 그의 벼슬생활은 주로 외지에서 보냈는데, 이것은 곧 권간들에게는 그의 존재가 방해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成宗實錄
燕山君日記
國朝人物考

[집필자]

권오호(權五虎)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