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효열(閔孝悅)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BBFCD6A8C5F4B1405X0 |
자(字) | 성보(誠甫) |
생년 | 1405(태종 5) |
졸년 | 1482(성종 13)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여흥(驪興)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민대생(閔大生) |
외조부 | 허금(許錦) |
공신호 | 원종공신 |
[상세내용]
민효열(閔孝悅)
1405년(태종 5)∼1482년(성종 13).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보(誠甫). 소윤(少尹) 민대생(閔大生)의 아들이며, 모친은 고려말의 전리판서(典理判書) 허금(許錦)의 딸이다.
1429년(세종 1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처음 종부시직장(宗簿寺直長)이 되었다.
그뒤 우헌납(右獻納)‧정랑(正郞)‧소윤‧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등을 거쳐 성종조에는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및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441년부터 10여년간 외읍(外邑)의 공물을 대납한 일로, 한때 종신토록 관리가 될 수 없게 하여 서용(敍用)하지 않는 폐고불서(廢錮不敍)에 처하여졌으나 1453년(단종 1)관의 독징(督徵) 때문이었다 하여, 다시 서용되었다. 세조의 공신책봉에는 원종공신 2등에 올랐다.
1429년(세종 1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처음 종부시직장(宗簿寺直長)이 되었다.
그뒤 우헌납(右獻納)‧정랑(正郞)‧소윤‧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등을 거쳐 성종조에는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및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441년부터 10여년간 외읍(外邑)의 공물을 대납한 일로, 한때 종신토록 관리가 될 수 없게 하여 서용(敍用)하지 않는 폐고불서(廢錮不敍)에 처하여졌으나 1453년(단종 1)관의 독징(督徵) 때문이었다 하여, 다시 서용되었다. 세조의 공신책봉에는 원종공신 2등에 올랐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文宗實錄
端宗實錄
世祖實錄
國朝榜目
文宗實錄
端宗實錄
世祖實錄
國朝榜目
[집필자]
최진옥(崔珍玉)
대표명 | 민효열(閔孝悅) |
성명 | 민효열(閔孝悅) |
성명 : "민효열(閔孝悅)"에 대한 용례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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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