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의손(柳義孫)
[요약정보]
UCI | G002+AKS-KHF_13C720C758C190B1398X0 |
자(字) | 효숙(孝叔) |
호(號) | 회헌(檜軒) |
호(號) | 농암(聾巖) |
생년 | 1398(태조 7) |
졸년 | 1450(세종 32) |
시대 | 조선전기 |
본관 | 전주(全州) |
활동분야 | 문신 > 문신 |
부 | 유빈(柳濱) |
저서 | 『회헌일고』 |
[관련정보]
[상세내용]
유의손(柳義孫)
1398년(태조 7)∼1450년(세종 32).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효숙(孝叔), 호는 회헌(檜軒) 또는 농암(聾巖).
직제학 유빈(柳濱)의 아들이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26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그뒤 검열을 거쳐, 감찰‧수찬을 역임하였다.
1436년에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고 곧 직제학에 올랐다. 동부승지를 거쳐 도승지가 되었으나 그는 학문에만 능할 뿐, 과단성이 결여되어 사무처리는 좌부승지인 황수신(黃守身)에게 맡겨서 처리하게 하였다.
1447년 이조참판으로 있을 때에 동반직(東班職)에 있던 우부승지 김유양(金有讓)의 아들을 잘못 서반직(西班職)에 옮겨놓은 죄로 파직되었다.
그뒤 다시 예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나 그때 상을 당함으로써 몸이 쇠약해져 관직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세종이 고기를 하사하여 보신을 시켰으나 끝내 병으로 사직하고 말았다.
그는 문장에 능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회헌일고』가 있다.
직제학 유빈(柳濱)의 아들이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26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그뒤 검열을 거쳐, 감찰‧수찬을 역임하였다.
1436년에 문과중시에 을과로 급제하고 곧 직제학에 올랐다. 동부승지를 거쳐 도승지가 되었으나 그는 학문에만 능할 뿐, 과단성이 결여되어 사무처리는 좌부승지인 황수신(黃守身)에게 맡겨서 처리하게 하였다.
1447년 이조참판으로 있을 때에 동반직(東班職)에 있던 우부승지 김유양(金有讓)의 아들을 잘못 서반직(西班職)에 옮겨놓은 죄로 파직되었다.
그뒤 다시 예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나 그때 상을 당함으로써 몸이 쇠약해져 관직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세종이 고기를 하사하여 보신을 시켰으나 끝내 병으로 사직하고 말았다.
그는 문장에 능하였다. 그의 저서로는 『회헌일고』가 있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國朝榜目
國朝榜目
[집필자]
이재범(李在範)
수정일 | 수정내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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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 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