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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왕후(昭憲王后)

[요약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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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異名)선인(宣仁)
이명(異名)재성(齋聖)
시호(諡號)소헌(昭憲)
생년1395(태조 4)
졸년1446(세종 28)
시대조선전기
본관청송(靑松)
활동분야왕실 > 비빈
심온(沈溫)
조부심덕부(沈德符)
외조부안천보(安天保)

[상세내용]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년(태조 4)∼1446년(세종 28). 조선 제4대왕 세종의 비. 성은 심씨(沈氏). 본관은 청송(靑松).

문하시중 심덕부(沈德符)의 손녀이고,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며, 모친은 영돈녕부사 안천보(安天保)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충녕군(忠寧君) 이도(李祹)와 가례(嘉禮)를 올려 빈(嬪)이 되고, 경숙옹주(敬淑翁主)에 봉해졌다.

1417년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에 개봉(改封)되고, 이듬해 4월 충녕대군이 왕세자에 책봉되자 경빈(敬嬪)에 봉해졌으며, 같은해 9월에 내선(內禪)을 받아 즉위하니 12월에 왕후로 봉하여 공비(恭妃)라 일컬었다.

그러나 1432년(세종 14)에 중궁(中宮)에게 미칭(美稱)을 올리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라 하여 1432년에 왕비로 개봉되었다.

심온세종이 즉위한 뒤 영의정에 올라 사은사(謝恩使)명나라에서 귀환하던 중 아우 심청(沈泟)이 군국대사를 상왕(上王: 태종)이 처리한다고 불평한 일로 대역(大逆)의 옥사(獄事)가 일어나 그 수괴로 지목되어 수원으로 폄출되어 사사되었다. 이 일로 폐비의 논의가 있었으나, 내조의 공이 인정되어 일축되었다.

1446년에 52세로 죽자 헌릉(獻陵)에 장사지냈다. 뒤에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으로 이장하였다. 『영릉지(英陵誌)』예조판서 정인지(鄭麟趾)가 제술하였다. 휘호는 선인제성(宣仁齊聖), 시호는 소헌(昭憲)이다.

[참고문헌]

太宗實錄
世宗實錄
璿源系譜
燃藜室記述

[집필자]

박천식(朴天植)
수정일수정내역
2005-11-302005년도 지식정보자원관리사업 산출물로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